'시적인 것', 시와 시적언어 사이의 길.
그러니까, 을 과학적 아이디어들의 장에 위치시키는 것이 참된 것이 되려면, 시적인 앎과 과학적인 앎 사이의 경계가 흐려져 있다는 것이 입증되어야 하겠지요. 그 시적인 앎/과학적인 앎의 경계를 분명하게 가르는 사람들의 주장을 반증하게 되면 저의 이야기도 끝나게 되겠습니다. ↑ 황지우, '시적인 것', '신호', 223 '시적인 것'이 객관적 인식의 대상이라면, 시는 '보면서 보여주는 것'이므로, 무엇인가를 지시해야만 할 것이다. 무엇을 지시하는가? 이것은 다시, ''시적인 것'이 무엇인가'라는 실체적 속성에 관한 질문을 불러들이지만, 그는 '시가 허구적이므로 비지시적'이라는 논리실증주의적 입장을 비파하면서 '시적인 것'의 개념이 '마땅히 비워져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어...(중략)..."시적 진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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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여기의 외부로서 한문맥의 가능성
“현대에도 중요하니까, 유용하니까 하는 이유 때문이 아니더라도, 현대와는 다른 하나의 세계를 이루고 있다는 바로 그 이유만으로도, 한자를 배울 의미는 충분히 있다. 하물며, 우리들이 탈피하려고 했던 말의 세계라면 더더욱.” 사이토 마레시, 『한문맥과 근대일본- 또 하나의 말의 세계-』, NHK 북스, 2007년 오늘날 동아시아의 인문학이 해결해야할 난제 중 하나는, 한문, 혹은 한문맥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문제이다. 그건 이미 죽은 말이지만 우리의 선조들이 사용했기 때문에 분명히 ‘우리 문화’의 일부이며, 그 흔적들을 어떻게든 보존-계승해야 한다는 입장이 있으리라. 그 한편으로 최근의 중국의 팽창과 관련되어, 살아있는 언어로서의 한자의 실용성을 강조하는 입장도 조금씩 힘을 얻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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