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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차 세차 1. 지난 일요일에 작은 형이랑 세차를 했다. 사실 한달 정도 전에 십년 넘은 차를 바꿨는데, 그 차의 구입 과정은 여러가지로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 코로나로 인해 대기 시간이 1년을 넘어가는 와중에 담당하던 영업사원이 은퇴를 해야 했고, 새롭게 배정된 영업사원과는 합이 맞지 않았다. 출고 일시 문제로 몇 차례 전화로 다투고 거의 포기할 시점에 나온 차는, 검수 과정에 하자가 있어서 돌려보냈다. '대체 차가 뭐라고, 그깟 차 하나 때문에'라는 생각이 안 들 수 없었는데, 그 때마다 작은 형은 차의 중요성에 대해서 집요하게 환기시켜줬다. 사실 구매 때부터 형은 명실상부한 지름신으로서의 역할을 아주 충실히 수행해, 형과 통화 한번 하고 나면 차종이 바뀌고, 또 한번 통화하면 차의 옵션 등급이 바뀌어 어느틈에.. 더보기
자유 수영 레인 20년 동안 수영을 했지만 오랫동안 나는 평형과 접영을 할 줄 몰랐다. 한번도 배운 적이 없었고, 배우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으니까. 스포츠센터에서 수영을 처음 배운 것은 유학 직전이었다.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일본에 가기 전 한달 동안, 나는 동네에 새로 생긴 스포츠센터 지하에 있는 수영장을 딱 한달 동안 다녔다. 아침 6시 초급반. 한 여름인데도 물은 너무 차가웠지만 어깨가 떡 벌어진 여자 강사님의 우렁찬 소리에 후다닥 들어가 발차기를 하고, 호흡을 배우고, 자유형과 배형을 배웠더니, 한국을 떠날 날이 다가와 있었다. 일본에서 수영을 시작한 것은 순전히 살기 위해서였다. 어느 날 몸을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허리가 아파서 패닉에 빠진 적이 있었는데, 그 원초적인 공포가 초급자인 나를 수영장으로 인.. 더보기
파자마 파티 코로나 팬데믹 때부터 아이 티를 조금씩 벗어나기 시작한 딸내미가 어느새 중학생이 되더니, 주말이면 파자마 파티를 한다며 친구네 집에서 자고 오곤 한다. 실제로 예쁜 파자마를 챙겨서 간다. 딸내미는 열살 때까지 혼자 있지 못했다. 아내가 외출해 둘이 있을 때, 내가 담배 피러 나가면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는 나를 지켜보며 손을 흔들곤 했다. 딱히 무엇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한 공간에 있으면 됐다. 그걸 아내는 '분리 불안'이라고 했고, 동에서 운영하는 청소년 상담센터에서 놀이치료를 받도록 했다. 일주일에 한번 아이는 선생님과 만나서 놀았는데, 가끔은 내가 셔틀을 했다. 코로나 팬데믹이 발생해 학교에 갈 수 없게 되었는데, 마침 반배정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오히려 잘 되었다고 본격적으로 방에 틀여박히더.. 더보기
통로의 장소성 S아파트 단지의 재건축 공사가 시작되어서, 더 이상 그 단지를 통해서 부모님 댁으로 갈 수 없게 되었다. 올림픽이 열리던 해 이 동네로 이사온 이래로 S아파트 단지는 내게 있어서 각별한 추억이 깃 든 곳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그 단지를 통해서 독서실을 다녔는데, 가기 전에 꼭 들려서 담배를 피던 곳이 있었다. 1동과 2동 사이의 수풀이 우거진 비상도로 곁으로 쭉 늘어져 있었던 조경석 중 하나가 그곳으로, 나는 거기서 청솔이나 88, 그리고 디스를 피웠다. 시간대는 주로 저녁 7-9시 사이였고, 때로는 딱 한 개피 필 시간을, 때로는 서너 개피 필 시간을 거기서 보내고 S 아파트 맞은 편의 독서실에 가면, 독서실 주인 할머니가 시계를 보며 출입 시간을 기입했다. 한번 들어가면 좀처럼 나오기 힘들어서 .. 더보기
24년 1. 24년만이다, 혼자서 열차를 타고 낯선 곳을 헤매게 된 건. 혼자 떠돌며 '24년'이라는 시간에 대해서 생각했다. 실은 몇 년 전 안식년 때에 생각하기로 했으나 팬데믹으로 미국행이 좌절된 이후 자연스럽게 뒤로 미뤄졌다. 언제 한번 정리해야지, 정리해야지 하는 와중에 안식년이 끝났고 잡일에 시달리게 되었다. 잡일을 하는 사이에 문득 찾아온 기회였다. 그러나 실은 냉큼 잡지도 못하고 주저주저하다가 마지못해 누군가에 떠밀린 듯 항공권을 구매해놓고도 뭔가 짜릿한 해방감을 느끼기보다는 마지막까지 항공권 취소를 고민했었다. 이런 주저함은 24년 전에는 없던 일이다. 24년 전 여름 뉴욕을 갈 때, 그러니까 IMF 직후 찾아온 기회를 나는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냉큼 받아들였다. 겁도 없이 한번도 만난 적도 없는.. 더보기
히데오 만나기 2017년 여름,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키치조지역으로 향했다. 10여년 일본 생활을 청산하고 떠난 이후에도 이러저러한 일로 도쿄에 왔고 키치조지에도 여러차례 들렸지만, 이번처럼 마음이 두근거린 적은 없었다. 히데오를 다시 만난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터질 듯 했다. 몇 개월 전 학교 메일 계정에 그의 메일이 들어와 있었다. 기억합니까, 히데오입니다만... 그렇게 시작하는 메일이었다. 히데오라는 일본 이름은 매우 흔하지만 내가 아는 히데오는 오직 한 사람뿐인데, 정확히 그였다. 1999년 어느 가을날 미타카 기숙사 공용룸에서 그를 처음 만났을 때, 자신의 코를 가리키면서,히데오라고 발음하던 그 모습이 고스란히 머리에 재생되었다. ▶▶ 일본인답지 않게 키가 크고 이국적인 분위기의 히데오는, 독일지역학과의 .. 더보기
신해철 기억1 ▶ 신해철에 대해서 써야지, 써야지 하면서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나갔던가.....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신해철 음악이 나오면 언제나 생각한다. 그가 그렇게 이 세상을 떠난 이후부터 몇 년간 차에서 신해철을 들으면 언제나 그에 대해서 써야겠다는 강박에 빠졌지만, 그것이 의지로 바뀌기는 결코 쉽지 않았다. 왜일까. ▶▶ 그것은 의외로 내 젊은 시절에 그의 존재가 단단히 박혀 있기 때문이다. '의외로'라는 말을 쓴 것은, 그의 음악을 내가 아주 좋아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자발적으로 그의 음악을 찾고, 반복해서 듣고, 외우고, 내 노래로 만들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오히려 반대였다. 매우 우연한 기회에 나는 그에게 인도되고 있었다. ▶▶▶ 91년 2월이 그러했다. 고등학교 졸업식날 강남역 언저리에서 친.. 더보기
이 앙큼한 고양이의 매력, 혹은 소설 쓰기의 현장 100년 넘도록 일본인들의 사랑을 받아온 나쓰메 소세끼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인 『吾輩は猫である』(1905~6)가, 서은혜에 의해 『이 몸은 고양이야』라는 도발적인 제목으로 다시 번역되었다. 해방 이후만 하더라도 이 원작은 1962년 김성환에 의해 『나는 고양이다』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이래 『나는 고양이로다』(최을림 역, 중앙출판사, 1992),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유유정, 문학사상사, 1997) 등으로 번역되어 왔지만, ‘나’를 ‘이 몸’으로 번역한 것은 획기적인 시도로, 논란을 불러올 것으로 예상된다. 아직 번역자의 해설을 보지 못한 상황에서 이러한 번역 의도에 대해서 논하는 것은 무리가 있지만, 일단 이 번역이 고양이 화자를 거의 무의식적으로 인칭대명사 ‘나’로 환원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