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적 문학의 시도 : 리셋 가능한 생(生)의 가능성
☞ 순문학의 독자가 다양한 계급이나 연령에 걸쳐있다고 하는 것은, 순문학이 현실을 그리고 있다고 하는 기대에 의해 지탱되고 있다. 그러한 기대가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쿠타가와상 수상작을 둘러싼 보도 기사이다. 그들 기사에서는 대부분의 경우, 소설의 내용이 사회문제와 결부되어 말해진다. 미스테리나 호러는 오락을 위해서 읽지만, 순문학은 오락이 아니라, 사회를 알기 위한(예를 들면 NEET나 재일 한국인의 현재나, 독신 여성의 현재를 알기 위해서)교양으로서 읽는다고 하는 전제가, 일본에서는 반년마다 재강화된다. ☞ 1995년 이후, 필자가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에서 "동물의 시대"라고 부른 시대가 시작되자, 사람들은 복잡한 이상이나 허구가 아닌, 단순한 현실을 찾기 시작했고, 순문학은, 문학적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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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는 기계
그러나 사실이 그렇게 불명료한데도, 야시키와 카루베, 둘다 각각 나를 의심하고 있는 것만은 명료하다. 하지만 이 나 한 사람에게 명료한 것이 어디까지가 현실로서 명료한 것인지 어디서 어떻게 잴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 사이에는 모든 것을 명료하게 알 수 있다는 듯이, 보이지 않는 기계가 끊임없이 우리들을 재고 있고, 그 재어진 채로, 또 우리들을 밀어부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들은 서로 의심하면서 내일이 되면, 일이 모두 끝나서 편하게 되는 것을 예상하고, 돌아오는 임금을 받는 즐거움을 위해서 다시 피로도 싸움도 잊고 그 날의 일을 끝내버리면, 마침내 내일이 되어서 또 누군가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새로운 사건에 만나야 했다. 요코미쓰 리이치, 기계, 1931. 일본 문학에서 "기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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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밥
또 길게 체류하는 손님을 좋아하게 된 경우, 그녀들은 손님의 밥상에 남은 것을 자신의 밥상에 옮겨서 식사를 한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그"의 밥상인 경우다. 여자의 밥상 위의 것은, 본능적으로인지 알수 없지만, 쳐다도 보지 않는다. "병이 없는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고, 더럽지도 않아"라고 그녀들 중 한 사람은 그녀들에게 말하면서 젓가락질을 한다. 게다가 이 여자다운, 그리고 가정적인 모습을 끝까지 관철시키기 위해서일까. 한 사람의 남자가 남긴 건, 그녀들 중 한 사람만이 계속해서 먹는 것이었다. 이것은 언제부터인지는 알수 없지만, 그녀들 사이의 불문율이었다. 이런 얘기는, 손님에게는 결코 흘리지 않는 그녀들의 비밀이지만, 밥상 위에서도 바람둥이는, 역시 오키누였다. 오키누가 상류의 집(창녀촌)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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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향성에 관한 추억
z 「지향성」을 끄집어내는 것으로, 예의 수수께끼(이념적/보편적인 것과 경험적/개별적인 것과의 관계가 어떻게 가능하게 되는지)가 해명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에 주의해야 한다. 「지향성」이란 그것에 의해서 뭔가를 설명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거기에 물어야 할 수수께끼가 있음을 지시하는 문제개념에 다름아니다. 즉, 각각 독자의 신분을 지니는 이념적/보편적인 것과 경험적/개별적인 것이, 「지향성」을 매개로 해서 「지향적내재」라는 독특한 방법으로 묶여지는 것은 도대체 어떤 사태인가? 사이토 요시미치, 후설-기원의 철학, 코단샤, 2002 십년 전 압구정동에서 H와 J와 만났을 때, 우리가 지향성에 대해서 얘기했었다는 사실이, 지금 생각해보면 여러가지 의미에서 의미심장하다. 물론 그 때의 나는, 국문과로 전업한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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