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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생각

지향성에 관한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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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향성」을 끄집어내는 것으로, 예의 수수께끼(이념적/보편적인 것과 
경험적/개별적인 것과의 관계가 어떻게 가능하게 되는지)가 해명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에 주의해야 한다. 「지향성」이란 그것에 의해서 뭔가를 설명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거기에 물어야 할 수수께끼가 있음을 지시하는 문제개념에 다름아니다. 즉, 각각 독자의 신분을 지니는 이념적/보편적인 것과 경험적/개별적인 것이, 「지향성」을 매개로 해서 「지향적내재」라는 독특한 방법으로 묶여지는 것은 도대체 어떤 사태인가? 

사이토 요시미치, 후설-기원의 철학, 코단샤, 2002 



십년 전 압구정동에서 H와 J와 만났을 때, 우리가 지향성에 대해서 얘기했었다는 사실이, 지금 생각해보면 여러가지 의미에서 의미심장하다.

물론 그 때의 나는, 국문과로 전업한 H가 왜 후설의 지향성을 끄집어내는지 알수 없었다. 물론 그 당시 H의 관심이 "비밀경찰이 24시간 감시하더라도 결코 알아낼 수 없을" 시인의 내면에 대해서 얘기했던 로티의 작업에 있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것과 후설의 지향성이 어떤 고리로 묶이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솔직히 알수 없었다. 아니 나로서는 지향성이라는 개념이 너무나 단순하고 당연해 보여서, 그게 왜 스터디를 필요로 할 만한 대상인지 알 수가 없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그날, 우리는 딴 얘기를 더 많이 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한 십년 정도 세월이 지나고 보니, 그 딴 얘기들의 디테일보다는, 그 지향성이라는 말이 훨씬 더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그것은 일본에 있는 나와 미국에 있는 J의 현재를 고려할 때, 너무나 예언적인 듯한 느낌이 든다. 마치 지난 십년은, 이 지향성이란 말 속에 숨어 있는 미스테리의 깊이를 이해하기 위한 세월은 아니었을까, 하는 느낌마저 들 정도로...

..그러니까, 우리에게 안심하고 딴 얘기를 할 수 있게 해주는 그 어떤 것의 미스테리를.

십년이 지난 지금...그런가 벌써 십년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