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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생각

누가 얼마 받는지를 알아야만 그 삶의 의미를 아는, 불쌍한 것들을 남기고.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하신 후, 나는 몇 개의 기사를 뒤져서 한국어를 배우는 일본인 학생들과 같이 읽었다. "서임"이라든지 "선종"이라든지 하는 어려운 단어가 있었음에 불구하고, 한국인이 존경하는 인물이, 박정희 대통령이나 이건희 전 삼성 회장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그저 이름만 기억해주길 바랬다.

무엇보다도 명동성당이 어떤 곳인지를 알려주고 싶었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일요일마다 친구들과 시를 읽으러 명동성당 카톨릭 회관으로 가곤 했는데, 어느 가을날 일요일에는 데모 때문에 들어갈 수 없었다. 친구들과 만나기로 한 나는 경찰들이 에워싼 명동성당 주변을 빙글빙글 돌면서, 얼른 데모가 진압되어 친구들과 만나길 기다렸는데, 데모는 끝내 진압되지 않았다.

왜 그랬는지는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건 단순히 경찰들이 성당으로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만이 아니라, 성당의 관리자가 바티칸처럼 패트롤을 불러 시위대를 쫓아내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걸. 그러니까 성당의 관리자가, 성경에는 믿음이 불분명한 시위자들을 성당에 받아들여도 된다고 적혀져 있지 않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무시했다는 것을. 나아가 그는 그것을 관례화했다는 걸.

그날 내가 친구들과 그곳에서 오손도손 시를 읽을 수 없게 된 것은 전적으로 그 성당 관리자 때문이었지만, 그가 없었다면, 그리하여 명동 주변을 빙글빙글 돌지 않았다면, 나는 시가 무엇인지 평생 알수 없었으리라는 걸 이제는 잘 알고 있다. 나아가 깨끗한 것만 깨끗한 것이 아니라는 것도. 

나 같이 어리석은 것한테도 그런 가르침을 주신 추기경인데, 그에 관한 기사는 정말로 끔찍하다. 추기경이 얼마를 받았고 얼마를 남겼는지를 캐고, 그것을 자랑인듯 대문짝만하게 보도하는, 그 말들의 유통 속에 있는 인간들은 도대체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까? 

누가 얼마 받는지를 알아야만 그 삶의 의미를 아는, 이 불쌍한 것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