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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문학 & 일본

전향: 이론-원리중독자들의 작은 세계


 

표 (1) 전향에 대한 일반적 이해


 표 (2) 전향에 대한 요시모토 타카아키의 이해




일반적으로 "전향"이라는 말은 사상이나 정치적 신념을 바꾸는 것을 의미하는데, 일본의 경우에 "전향"은, 1920-30년대, 국가 공권력의 탄압이란 외적 요인에 의해서 적지 않은 지식인들이 공산주의-사회주의적 입장을 포기하게 된, 일련의 사건의 핵심 키워드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표1)

이런 문제로서의 "전향"은, 패전 후 일본의 지식인들이 왜 우리는 질수 밖에 없는 무모한 전쟁을 할 수밖에 없었는가, 혹은 왜 일본인들은 전쟁을 막을 수 없었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에서 주목받게 된다. 즉, 한 인간의 사상적 자유가 왜, 그리고 어떤 식으로 포기되었는가-를 추적함으로써, 1920-45년까지의 일본사회의 문제가 무엇이었는지를 규명하기 위해서, "전향"이 주목받은 셈이다. 일테면 "전향"은, 마루야마 마사오가 지적했듯이 일본 사회의 전근대성, 즉, 천황이라는 초월적인 존재를 축으로한 초국가주의적 파시즘의 일면을 드러내기도 한다.  

하지만 "전향"이 "전향문학"으로 되는 경우, 문제가 복잡해진다. 즉, 패전 직후 일부 지식인들이 전쟁에 참여하거나 묵인한 지식인들을 단죄할 때, "전향자"들이 입을 다물지 않고 자신들이 왜, 그리고 어떻게 전향하게 되었는지를 문학의 형식으로 쓰게 되면서, 문제가 복잡해지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그들의 글을 읽고 각 "전향"들을 평가해야 하는 요청을 받게 되게 되는데, 그 요청에 성실히 응하면 응할수록 "인간의 나약함"과 "전향의 불가피성"을 동시에 이해하게 되면서, 자칫 잘못하면 평가 자체의 의미를 잃어버리게 되기 쉽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런 사상의 방기의 최종적인 요인인, 인간의 나약함은 어떻게 이해될 수 있을까?  이에 대해서 요시모토 타카아키는 그런 "전향자"를 "혹시라도 한 원칙논리 그 자체의 오류가 선명해질 때에는, 거기에는 더이상 어떤 사상적 실체도 남지 않게 되는데, 그 때는 단순히 정당하다고 생각되는 다른 원칙논리로 바꿔타게 될 뿐"인 인간으로 파악한다. 즉, 오류투성이의 현실과는 거리를 두고, 그저 관념 세계에서의 정합성 속에서만 왔다가 할 뿐인 인간으로. 그런 경우에, 전향자와 비전향자는 사실상 똑같은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고, 요시모토는 본다.  

그에 의하면 진정한 전향자란, 표(2)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이미 추상화된 세계적 질서 속의 좌-우 대립을 빠져나와서, 그 바깥에 있는 현실에 직면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좌우 방향의 화살표와 관련된 사람들) 즉, 이른바 엘리트들이 거의 자동적으로 자기 나라를 경멸하는, 그런 지적회로에서 빠져나오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사상적 전향 아닐까, 하는 것이 요시모토의 주장인 셈이다. 그는, 방기해야할 일본의 지식인들의 전형적인 사고과정을 다음과 같이 분류하고 있다. 

1) 지식을 배워, 논리적인 사고법을 어느 정도 손에 넣게 되면서, 일본 사회를 이치에 맞지 않는, 하찮은 것으로 보는 관점. (그 때문에 사고의 대상으로서 일본 사회의 실체는 아예 도마에도 오르지 않게 된다고)

2) 일본적 모델의 특징은, 사고 자체가 결코 사회구조와 대응되지 않고, 논리 그 자체의 자동화에 의해서, 자기 완결하는 것으로 보는 관점. (어떤 경우에는 발레리가, 지드가, 또 어떤 경우에는 사르트르가, 마치 옆집 사람인 것처럼 모델들 사이에서 논해지고, 손쉽게 버려지는 풍조가 발생하는 것은 이 때문이라고.)

다시 정리하자면, 일본적 현실에 눈을 감은 채로 서구 로고스의 세계 안에서 떠돌아다니는 이런 지적 형태 속에서는, 사실 "전향" 운운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진정한 사상적 전환이란, 그것이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그것과 함께할 용의를 갖는가 갖지 않는가에 달려 있다고 바꿔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요시모토의 전향론은, 그의 인생을 생각할 때 더욱 의미가 깊다. 위의 글에서 드러난 "현실", 혹은 "사회구조" 집착은 그저 1950년대의 경향에 불구하고, 1960년대부터 그는 "언어", 즉 일본식 로고스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즉, 그 자신, 일종의 전향자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보다도 한길을 간듯한, 그런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아마도, 마루야마 마사오와는 다른, 어떤 풋풋한 과격함, 즉 생명력이 일관되게 유지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