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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문학 & 일본

殉死

  



 
자신이 친히 데리고 있던 그들이, 목숨을 아까워 하지 않는다는 것은 타타토시도 믿고 있었다. 따라서 순사(殉死)를 고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이에 반해서 만약 자신이 순사를 허락하지 않은 채로, 그들이 살아가게 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가신 일동은 그들을 죽어야할 때에 죽지 않는 자, 은혜를 모르는 자라고 생각하며, 비겁자라고 업신여기리라. 그것만이라면, 그들도 혹은 참고 목숨을 미츠히사에게 바칠 때를 기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선대의 주인은, 그들이 은혜를 모른다는 것도, 비겁자인 것도 모르는 채로  그들을 데리고 있었다고 말하는 자가 있다면, 그건 그들이 참을 수 없으리라. 그들은 얼마나 분하게 생각할 것인가. 이렇게 생각하니, 타다토시는 「허락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모리 오가이, 아베일족, 1926년 




만약 '할복'을 축으로 일본의 근대 이전과 이후를 구분한다면, 근대 이전에는 주군의 허락이 필요했던 반면, 근대 이후에는 허락이 필요 없었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모리 오가이의 "아베 일족"은, 주군이 가신의 할복을 허락하지 않는 것이 그와 그 일족의 삶을 어떤 식으로 막다른 골목으로 몰고 가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소설이다. 일문학에서는 역사 소설이라고 불리우지만, 오늘날 식으로 말하자면 "윤리 문제를 다룬 소설"이라고 하는 편이 적당할 듯 하다. 즉, 이 소설은, 주군이 죽었을 때 따라 죽는, 순사殉死라는, 한 문화속의 도덕-율법의 모순과 그 밑에 있는 윤리를, 한 개인의 정신적 갈등이 아니라, 그것이 행해지는 공통체 속에서 드러내고 있는 텍스트로 볼 수 있다. 
 
흥미 있는 건, 이 도덕-율법은, 조항 해석에 따라서 자동적으로 행사되는 것이 아니라, 주군이 「허락한다」고 말할 때만 비로소 기동되었다는 점이다. 여기서 주군이「허락한다」고 말할 때, 허락되는 것은 순사가 아니라, 아감벤 식으로 말하자면 도덕-율법의 정지, 즉 예외인 셈이다. 즉, 도덕-율법은 공동체의 지속을 위해서(혹은 도덕-율법 그 자신의 지속을 위해서) 순사를 권장하지 않으니, 아무도 죽을 수가 없다. 하지만 주군 타다토시는, 주군의 자격으로, 열여덞명에게 특별히 순사-따라죽을 수 있는 권리-죽음으로의 욕동-라는 예외를 허락한다, 무척 아까워하면서, 고민 끝에. 반면 예외를 받은 자들은, 그것이 비록 죽음이라도 기뻐한다. 

에도 시대의 일본에서 보여지는 이렇게 예외를 둘러싼 양상은, 아우슈비츠와는 다른 모습이라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즉, 죽음-예외를 부여하는 자는 그것을 아까워하고, 예외-죽음을 부여받는 자는 그것을 기뻐하는 모습은, 우리가 아는 아우슈비츠의 양상을 뒤짚어 놓은 꼴이다.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가?

이 글에서 오가이는, 이 무사들의 "기쁨"을 교환가치의 성립으로 설명한다. 즉, 은혜를 베푼자에게 은혜를 값는 것, 혹은 늙은 주군에게 아버지가 따라 죽는 것에 의해 젊은 주군에게 아들이 더 큰 보상을 받는 것, 이라는 식으로.  그건 분명 일리가 있다. 하지만 모리 오가이가 이 글을 쓰던 이 시절의 일본에서는, 이미 이런 교환가치를 빌어서 설명하지 않고서는 순사-라는 사건의 의미를 꺼낼 수 없을 정도로, 세상은 제국-자본주의의 번성기었다는 것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나츠메 소세끼의 "마음"에 나오는 노기 장군의 순사에 대해서, 당시 일본인들은 호의적으로만 보지 않았다는 것을 여러 자료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당시 일본인들은, 이 순사-할복이라는 사건을 통해서 서구인들이 다시금 자신들을 야만인이라고 볼까봐 두려워 했다.)        

훨씬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서, 에도 시대의 무사들의 윤리서로 정평이 나있는 「하가쿠레」를 보면 조금의 단서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저자인 야마모토는 "무사도란 죽을 곳을 발견하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 말은, 주체에게 있어서 죽음이라는 것은 그저 생물학적인 사실이 아니라, "발견되는 것"이라고 말한 바디우의 말을 증명하기에 충분하다. 그렇다면 무사들이란, 생과 죽음이라는 분리할 수 없는 사유 중에서, 여기에 있는 삶을 저쪽으로 두고 저쪽에 있는 죽음을 여기로 데려와, 그것을 예외라는 형식으로 관철시키도록 행동해, 죽지 마라-는 율법에 구멍을 내는 존재인 셈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사가 율법 외부에 있는, 와야할 윤리적인 존재라고 말할 수는 없다. 무사들은, 그런 외상을 내는 것에 의해서, 오히려 율법을 봉합하는데 훌륭하게 기여하는, 극히 율법적인 존재라고 해야할 것이다. (실제로 에도시대에는 그들이 경찰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는 편이 더 좋을 지도 모른다. 무사들은, "예외없음"을 관철해 보편성을 열어가려는 주군에게, 스스로를 예외-문학적 차이로서 인정하도록 집요하게 협박하는, 희대의 사기꾼에 지나지 않는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