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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문학 & 일본

미시마 유키오 VS 전공투


 





미시마의 영문 인터뷰를 찾아보다가, 우연히 전공투와의 토론 영상을 발견하고, 한참 보면서 웃었다.

글로 볼 때는 몰랐는데 이렇게 화상 속의 분위기를 보니, 뭐랄까 음성언어가 수록된 문자 언어가, 음성 언어가 가진 독특한 아우라를 툭툭 쳐내고는, 세월이 지나면서 한없이 무거워지고 말았다는 느낌이 든다. 그러니까 그 느낌은, 유튜브의 이 영상 밑에 달린 다음의 코멘트로 대변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에 "혁명의 시대" 따윈 없다. 모든 게 "놀이"였다."

물론 이런 코멘트는 "냉소주의"라고 비난 받을 수 있다는 걸 모르는 바 아니다. 좌파와 우파가 만나서 화기애애하고, 진지하게 사상적 논의(?)를 하고 있는 것이, 이 토론의 본질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을 테다. 근대를 초극한다는 것, 그 일점이 중요하다고 하는 사람도 있겠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런 토론의 자리/극장이 이미 근대의 정점을 표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언제나 이슈를 만들고, 좌담회를 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평화적으로 토론하며 공개하거나 문서로 만드는 것, 그것이야말로 너무나 훌륭한 근대적인 제도의 하나일 것이다. 그러니까 지젝식으로 말하자면, 다른 방향으로 열심히 뛰어가는 자들이, 텔레비전 카메라를 들이대는 순간, 우리도 민주주의를 연출할 줄 알아, 라는 포즈를 취하는 것. (그 역도 성립하지만)

이 점에 대해서는 미시마도 전공투도 잘 알고 있었다. "자네들도 어쨌든 일본의 권력구조, 체제의 눈 속에 불안을 보고 싶은 것이 틀림없지. 나도 실은 보고 싶어. 다른 방향에서 보고 싶어. 나는 안심하고 있는 인간이 싫기 때문에 이런 곳에서 내가 이런 짓을 하고 있는 상황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 (웃음)" (나는 사병을 만들어야 하고, 너희들은 화염병을 부지런히 모아야 하잖아?) "어쨌든 나는 아주 최근에 어떤 자민당 정치가로부터, 폭력반대 결의란 걸 할테니까 서명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어. (웃음) 나는 태어나서 한번도 폭력에 반대한 적이 없기 때문에, 서명은 할 수 없다고 대답했지. (웃음) 나는 좌익이든 우익이든 폭력에 반대한 적이 한번도 없어. ....단지 무원칙, 혹은 무전제로 폭력을 부정해야한다는 생각은, 단지 공산당 전략에 올라타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좋아하지 않아. " (근데 왜 이렇게 폭력적인 우리가 서로 싸우지 않고, 이렇게 신사적이고 화기애애하게 토론을 하지? 그치 이상하잖아? )

근데 이런 "좌담회"가 마치 중요한 책처럼 번역이 되어서, 마치 현대 일본의 "격조 높은 토론과 본질적인 문제로의 돌진"을 보여준다는 듯이 소개되고(어떤 의미에서는 맞지만), "한국은 언제 한번 극과 극이 한자리에 모일 수가 있을까? "하는 자조를 부르는 것은 매우 곤란하다. 일본의 어떤 현상이 한국에 있어서 의미를 갖게 될 때, 그것은 숭고의 모범으로서가 아니라, 그렇다고 우리의 자기만족를 위한 대상으로서도 아니라, 우리가 선택할지도 모르는 선택지의 징후적 비극이나 코메디로서 봤을 때만 가능한 것은 아닐까?

냉소주의가 판을 치고, 토론다운 토론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하는 한국에서는, 이마저도 부럽게 되어버린 것일까? 한국의 지적 기대치가 이렇게 낮아졌는가 싶어서 찜찜하기 그지 없다. (토론 프로그램이 그렇게 많고, 계간지마다 죄 좌담회를 하는데 말이다!!)

나로서는 토론의 어휘구사력이나 의미론적인 국면보다는, 저렇게 어깨에 힘을 빼고, 자기가 지금 자기 얘기한다는 것을 최소한 의식하고 말하는, 저 수수한, 촌스러운 분위기는 조금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