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부터의 "사실"의 범람에 대해, 다른 (아래로부터의) "사실"성에 근거를 구하는 작품의 통속화나 해체는, 필연적인 기세로 진행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이 현재, 소재파/기록파가 직면하고 있는 일반적인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우리들은 끝도 없이 터져나오는 과승한 "사실"성을 가상으로 부정하고 무화할 수 있는 곳까지, 우리들의 현재에 있어서의 존재 의미를 묻는 것외에는, 이러한 정황에 대해 근원적으로 대치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사실"성 속에는 "진실"은 이미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때, 우리들과 현실 사이의 괴리가 최종 단계까지 와버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미 어떠한 과승한 "사실"의 범람에 대해서도 우리들이 대상성을 발견할 수 없을 정도로, "사실"의 벽이 "진실"과 우리들을 떼어놓아 버렸다면, 그곳에 전후문학이 현재 직면하고 있는 정황의 근원적인 과제가 존재하고 있다.
요시모토 타카아키, 전후문학의 현실성, 1962년
미디어의 발달이, "사실"의 범람이란 문제를 불러일으킨다는 것은, 일본의 경우 인터넷 이전에 이미 존재 했다. 카와무라 미나토가 지적했듯이, 일본의 전후 문학은, 전시 체제 때는 얘기할 수 없었던, 전쟁시에 있었던 "사실"을 말하면서(혹은 고발하면서) 출발했다.
출발은 좋았으나, 미디어가 정상화되고 한결 발전된 1960년대에 이르면, "사실"이 문학의 발목을 잡게 된다. 그러니까 위에서 아래까지의 수많은 "사실"들이 생산되고, 그 "사실" 속에서 각각의 권리 주장을 하는 상황 속에서, 사실중심주의의 문학은 더이상 예전같은 지위를 누리지 못하게 되었다고, 그렇게 요시모토는 말한다.
그에 의하면 이 시기 일본의 사실 중심주의 문학은, 하나의 "사실"을 감췄다가 노출시킬 때의 쾌락을 가지고 노는 추리소설의 형식으로 전환하거나(대중화), 하나의 "사실"의 의미를 또 하나의 "사실"을 빌어서 설명하는 악순환(타락)에 빠지고 말았다고 한다. 즉, "정치/사회 운동이 그 벡터를 현실 그 자체로 향하게 할수 밖에 없는 것과는 반대로, 표현된 가치체계 쪽으로 향할 수밖에 없는 벡터"가 문학이라는 점을, 그들은 너무나 쉽게 무시해, 결국 스스로 하녀가 되고 말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의 핵심이다.
물론 단 하나의 사실의 개입도 없이, 기호들만 나열되는 이른바 뜬구름 잡는 얘기는 곤란하다. 하지만, 사실중심주의자들은 더욱 곤란하다. 사실을 들이대고, 납득하지 않으면 또 다른 사실을 들이대고, 다시 또 다른 사실을 들이대는, 정말이지 진절머리가 나게 집요한 사실들에 직면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 알 것이다. 그게 어떤 확실한 사실도 얘기해주지 않는, 종교의 선도행위에 직면했을 때와 그리 다를 바 없는 감정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을. 그런 의미에서 지독한 사실 중심자들을 "사실범"이라고 부르는 것은 어떨까?
하지만 위의 글에서 요시모토이 지적했듯이, "사실"과 "진실"은 다르다고, 혹은 어떠한 "사실"도 그것이 표현체인 이상 가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인식을 공유하는 것으로, "사실범"들의 전횡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아마도 그럴 수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인식은 요시모토 뿐만이 아니라, 니체도, 심지어 2000여년 전의 불교도들도 이미 알고 있었는데, 여전히 사람들은 "사실"에 약하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을 말해주는 것일까?
수수께끼는 여전히 풀리지 상황 속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사실을 범하는 "연쇄사실범"은 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