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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과 정치성 시절이 하수상해서인가, 자기검열이 심해지고 있음을 느낀다. 페이스북에 들어가면 미묘한 뉴양스의 차이를 지닌 글들이 서로 논쟁하고 있는 경우를 볼 수 있는데, 나는 종종 구별없이 에 클릭한다. 이건 열심히 쓴 글이라, 이건 나와 생각은 다르지만 생각해볼 만한 것이라, 이건 재미있어서, 이건 슬퍼서, 혹은 반가워서, 등등의 이유 모두가 로 하나로 수렴된다. 때론 도 하지만, 내게 그 의미는 모두에게 '공유'를 원한다기보다는 떠내려가지 않도록 하는 것 이상의 의미는 없다. 이런 식으로 자기 변명 같은 걸 하다가, 사상의 일관성 같은 것을 생각하다가, 내가 어느 쪽인지 묻다가, 그 반대쪽은 지울까 하다가 말다가, 누군가로부터 왜 그 딴거에 좋아요를 눌렀냐는 핀잔마저 들으면서, 결국 자기 검열 같은 말을 떠올리면.. 더보기
글쓰기와 윤리 지난 가을 다음과 같은 문장을 몇 번이고 쓰려고 하다가 쓰지 못했다. "새 수영장을 구했다. 1층에 있는 수영장으로 저물녁에 수영을 하고 있으면 석양이 보이기도 한다...." 새 학교에 있는 수영장은 1층에 있다. 이 학교에 올 때까지 느꼈던 석연치않은 불안은, 이 수영장을 보는 순간 바로 해소되었다. 충분히 책을 넣을 수 있는 연구실에, 1층 수영장이라니. 나는 내게 찾아온 이 행운을 쓰고 싶었지만, 쓸 수 없었다. 수영을 하면서 나는 종종 세월호에서 죽은 아이들을 떠올렸고, 그 때마다 더러 물을 마셨었다. 수영을 끝낼 때면 세월호 이후의 글쓰기란 이런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쓰는 일보다 삭제하는 일이 많아진 대신, '좋아요'를 누르는 일이 늘어났다. 정작 수영장은 1년치를 끊어놓고도 일주일에.. 더보기
국가의 위기와 인문학적 상상력 우치다 타츠루 『길거리의 전쟁론』, 미시마사,2014(内田樹,『街場の戦争論』ミシマ社,2014』) ‘국가의 위기’라는 새로운 과제 오늘날 인문학은 새로운 변화에 직면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인문학자들의 당연한 사명처럼 인식되어온 국민국가론 비판이 수그러들고, 국가의 역할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는 글이 다수 발견된다. 그렇다면 이러한 변화는 무엇을 말해주는 것일까. 이는 많은 지식인들이 지적하고 있듯이 지난 이십여 년간 세계적으로 진행된 글로벌화로 인해 국가의 역할이 눈에 띄게 축소되면서 사회보장의 축소로 대표되는 국민들의 피해가 표면화되고 있는 상황에 기인한다. 실제로 최근 몇 년 동안에 국가가 어떤 위기에서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장면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볼 수.. 더보기
금지되어 있는 일을 굳이 하려고 한다면 요새 한국문학이 재미없어졌다고들 한다. 그렇다면 문학이 재미있었던 시절, 문학은 ‘어떻게’ 재미있었을까. 이와 관련해 일본문학이 가장 뜨거웠던 1960년대 중반에 발표된 쿠라하시 유미꼬(倉橋由美子)의 『성소녀(聖少女)』(서은혜 옮김, 창비 2014)는 여러가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성소녀』는 당대 일본사회의 강한 정치성의 자장 속에서, 글쓰기의 정치성을 모색해가는 작품으로 볼 수 있다. 자신이 다니는 학교가 ‘일교조’라는 ‘교육노동자’에게 장악되어 있다는 데 반발해 학교를 그만두고 ‘18금(禁)의 세계’로 치달리는 소녀 미키와, 한때 일본공산당 산하 조직에 있었지만 이제는 미국으로 가려고 전전긍긍하는 K. 우리에게도 분명 그리 낯설지 않은 이러한 ‘반사회적’ 성격의 등장인물들이 아직 ‘리얼리티’를 .. 더보기
그해 가을 그해 가을 이성복 그해 가을 나는 아무에게도 편지 보내지 않았지만늙어 군인 간 친구의 편지 몇 통을 받았다 세상 나무들은어김없이 동시에 물들었고 풀빛을 지우며 집들은 언덕을뻗어나가 하늘에 이르렀다 그해 가을 제주산 5년생 말은제 주인에게 대드는 자가용 운전사를 물어뜯었고 어느유명 작가는 남미기행문을 연재했다아버지, 아버지가 여기 계실 줄 몰랐어요그해 가을 소꿉장난은 국산영화보다 시들했으며 길게하품하는 입은 더 깊고 울창했다 깃발을 올리거나 내릴때마다 말뚝처럼 사람들은 든든하게 박혔지만 햄머휘두르는 소리, 들리지 않았다 그해 가을 모래내 앞샛강에 젊은 뱀장어가 떠오를 때 파헤쳐진 샛강도 둥둥떠올랐고 고가도로 공사장의 한 사내는 새 깃털과 같은속도로 떨어져내렸다 그해 가을 개들이 털갈이 할 때지난 여름 번데.. 더보기
한국 보수주의에 대한 단상 결혼을 하고 자식이 생기면, 기본적으로 '보수'적 관점으로 세계를 보게 된다. 여기서 '보수'적이라 함은 내 가족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시점이다. 이런 시점은 가족 구성원 중 아내와 어린 아이가 강자가 아니라는 것을 여러가지 시행착오 속에서 깨닫게 되면서 확고해진다. 아무리 사회적으로 훌륭하더라도 가족을 내팽게 친 사람들(특히 남자)에게 쏟아지는 비난은 바로 자기 옆의 약자를 내팽개친 데에 대한 비난이다. 하지만 이러한 '보수주의'는 자기 가족에 전전긍긍하는 사이에, 내 집 밖에 존재하는 약자들에 대한 신경을 꺼버릴 위험성이 있다. 내 집 바깥에는 내 아내보다 더 약하고, 내 아이보다 훨씬 약한 아이들이, 할아버지, 할머니가, 그리고 이들을 자력으로 지킬 수 없는 무기력한 남자들이 무수히 존재하고.. 더보기
지금 다시, 열정으로서의 문학을 지금 다시, 열정으로서의 문학을 사사키 아타루 지음, 안천 옮김 『이 치열한 무력을』 자음과 모음, 2013. 1. 지금 ‘혁명’을 말한다는 것-‘혁명’을 구원하면서 1퍼센트의 가능성에 걸기 사사키 아타루는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자음과 모음, 2012)이라는 단 한권의 책을 통해 한국 사회에 조용하지만 뜨거운 파문을 일으켰다. 그 원인은 글쓰기와 혁명이라는, 얼핏 보면 가장 거리가 먼 듯 느껴지는 두 개념이 실은 하나로 묶여 있음을 밝혔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데리다나 말라르메, 블랑쇼에 친숙한 독자라면 글쓰기, 혹은 책이 가지고 있는 근원적인 혁명성에 대해서 어느 정도 숙지하고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런 독자들도 한국에서는 비교적 소홀하게 다루어진 종교적 문맥을 통해 책과 혁명의 문제를 풀어.. 더보기
색채가 없는 하루키와 그가 '세계문학'에 입성한 해 1. 일국문학도 세계문학 아닌 하루키? 최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속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양억관 옮김, 민음사 펴냄)이 포함된 것을 놓고 말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노벨문학상에 다가가기 위한 작가의 야망과 출판사의 이해관계 속에서 세계문학전집 수록이 결정된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인데, 이는 당연히 짚고 넘어가야할 질문임은 분명하다. ▲ 무라카미 하루키. ⓒ민음사 제공하지만 하루키를 세계문학 전집을 통해서 만나게 되는 것은 그의 문학성에 대한 기존의 평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드는 하나의 소중한 기회가 되지는 않을까 싶다. 왜냐하면 이제까지 한국에서 하루키의 문학은 일국문학과 세계문학 바깥에 있는 듯한 착시 현상과 함께, 지나치게 특권적인 위치를 누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주지하다시피 1980년대 후반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