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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히데오 만나기

2017년 여름,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키치조지역으로 향했다. 10여년 일본 생활을 청산하고 떠난 이후에도 이러저러한 일로 도쿄에 왔고 키치조지에도 여러차례 들렸지만, 이번처럼 마음이 두근거린 적은 없었다. 히데오를 다시 만난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터질 듯 했다.

몇 개월 전 학교 메일 계정에 그의 메일이 들어와 있었다. 기억합니까, 히데오입니다만... 그렇게 시작하는 메일이었다. 히데오라는 일본 이름은 매우 흔하지만 내가 아는 히데오는 오직 한 사람뿐인데, 정확히 그였다. 1999년 어느 가을날 미타카 기숙사 공용룸에서 그를 처음 만났을 때, 자신의 코를 가리키면서,히데오라고 발음하던 그 모습이 고스란히 머리에 재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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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답지 않게 키가 크고 이국적인 분위기의 히데오는, 독일지역학과의 학부생이었고 특히 철학에 관심이 많았다. 덕분에 난 유학 간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아사다 아키라와 아즈마 히로키, 마쓰우라 히사키, 고바야시 야스오 등을 알게 되었고, 그들을 더듬거리면서 읽게 되었다. 석사에 들어갈 때는 일본어로 쓴 소논문의 첨삭도 받았었다. 정작 글을 쓴 나보다 그가 더 내 글을 꼼꼼히 읽어줘서 낯뜨겁던 감각이 아직도 잊혀지질 않는다.

히데오와 공부만으로 얽힌 것은 아니었다. 지금도 자전거를 탈 때면 종종 그가 옆에서 나를 부를 것만 같은 착시에 빠질 때가 있을 정도로, 우리는 참 많이 나란히 자전거를 타고 키치조지 공원을 오고 갔었다. 키치조지 오토야 정식집에서 같이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돌아올 땐 파르코 1층 식료품점에서 돼지고기 삼겹살 200그램을 사가지고 오곤 했다. 그는 그것으로 파스타를 만들어 먹었는데, 많이 한 날에는 내게도 나눠줬다. 그리 맛있지는 않았다. 그래도 그런 날이면 고맙고도 미안해서 어머니가 보내준 김치를 나눠줬는데, 그게 맘에 들었는지 나중엔 김치를 달라고 오기도 했다. 같이 양희은을 듣기도 했었지.

히데오와는 기숙사를 나오면서 조금씩 멀어지기 시작하다가 그가 철학과 대학원 진학이 좌절된 이후 연락이 두절되었다. 가라타니 같은 철학자가 되고 싶다고 말해온 만큼 대학원 진학의 좌절은 큰 충격이었을 텐데, 실제로 그는 내게 장문의 메일을 보내왔다. 부드러운 어조이긴 하지만 아카데미에서 거절당한 것에 대한 분노와 절망을 감추지 않는, 그야말로 다크한 내용이라 나도 적잖게 당황해버려서, 이에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답장을 보내기는 한 것인지도 정확하지 않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철학은 하지 않고, 로스쿨에 진학할 것이라는 선언만은 각인되어 있었다.

그로부터 거의 십오 년 후에 도착한 그의 메일에는, '변호사'라는 직함이 명시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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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여름 오후 3시 키치조지 마루이 앞에서 만난 히데오는, 아마 머리가 벗겨졌을 거라는 나 예측과는 달리 예전 모습 그대로여서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살도 찌지 않았고, 사회인 특유의 찌든 느낌도 나지 않았다. 잘 어울리는 캐쥬얼 차림이 마치 시간을 루프한 듯한 느낌 속에서 우리는 공원 쪽 골목으로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넌 어떻게 하나도 안 변할 수가 있지, 하는 말을 서로 주고받으면서.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그가 먼저 '어때, 한잔 할까' 하고 말을 꺼냈다. 오후 3시에 대뜸 술을 마시자는 그의 말이 조금 웃겼지만, 무엇이 철학도의 '차 한잔'을 '술 한잔'으로 바뀌었는지 궁금해하면서, 이십여년 전처럼 마음놓고 그에게 인도되었다. 그리고는 "마치 어제 헤어진 사람"처럼 맥주를 마시며 얘기가 시작되었다. 아무 것도 서두를 필요가 없었던 그런 대화가.

로스쿨을 졸업한 그는 일본 굴지의 쇼핑몰 회사의 변호사로서 개인 채무 관련 업무를 하고 있었다. 쇼핑몰 수익보다는 발급해주는 신용카드로 굴리는 현금 장사가 더 수익이 더 클지도 모른다는 말을 담담하게 하면서, 그는 다음 잔으로 빠르게 건너뛰었다. 그리고 현재의 일본에 대해 부정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경제도, 담론도 두근거림이 없어진 일본에 대한 얘기는 그리 새로울 것은 없었지만, 여전히 그가 도서관을 들락거리면서 유행하는 사상이나 담론을 팔로우하고 있다는 사실은 신선했다.

그래,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가 일본어로 출간된 내 책을 발견할 리도 없었을 테고, 그것을 매개로 내 메일 주소를 알수도 없었을 것이며, 그렇다면 늦여름 오후 3시에 키치조지에 내가 있을 이유도 없을 테다. 히데오에게는 나라는 존재가 그가 가지 않은 지의 세계의 일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나는 복잡해졌다. 내가 지의 세계를 대표할 자격이 있는지, 쉽게 자신할 수 없으니까. 그저 난......

나대로 살아남고자 했을 뿐이라고, 네가 있는 세계(내가 떠나온 세계)로 돌아갈 수가 없게 되어서, 어쩔 수 없이 여기서 살아가게 되었다고, 그러기 위해서는 네가 있는 세계를 잊어버리고, 어떻게든 여기서 잘 해나가야 했을 뿐이었다고

물론 히데오에겐 말하지 않았다. 굳이 말할 필요도 없었다. 우리 정도의 나이가 되면 이 딴 건 말하지 않아도 다 알 수 있게 되니까. 한 세계와 다른 또 한 세계 사이의 전면적 차이 따윈 존재하지 않고, 그저 미세한 차이만이 이야기의 실마리가 되어 줄 뿐이라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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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념의 세계 얘기에 지쳐, 결혼은 했냐고 물었더니, 아직 안했고 대신 다섯명의 여자를 사귀고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다섯명의 여자라는 말이, 이 머리에 인지되기까지 약간 시간이 걸렸다. 정말로? 그래. 그게 가능해? 어떻게 하다보니. 음... 음... 나는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알수 없었고, 알수 없을 때면 늘 그렇듯이 히데오의 알수 없는 인생을 거울삼아 그저 지금의 내 모습이 떠오를 뿐이었다.

대학 교원이 된 이후 세속적 도덕율에 갇히게 된 내 자신의 모습이란 과연 어떤가? 문을 열어놓고 진행되는 여학생과의 상담과 음주운전에 걸리지 않도록 가장 싼 대리운전 기사를 찾는 모습이며, 민감한 사안에 말을 고르는 모습, 출장시 아내와 딸과의 긴 통화 등이 차례로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그 끝의 끝에 히데오와 함께였을 때 ;

먼 훗날 지금처럼 평온하면서도 고리따분한 인생을 살게 될 줄은 조금도 예상하지 못하고,
책에 파묻혀가는 철학도 지망생의 금욕적인 삶을 비웃어댔던 내 모습.

그러나 지금, 내 앞에 앉아 있는, '다섯 명의 여자'를 운운하는 그의 존재는 내 인생란 그저 한낱 소시민에 지나지 않음을 어항 속의 금붕어처럼 낱낱히 드러냈고, 나는 억울하기보다는 담담한 감정 속에서 딱히 특별할 게 없는 내 삶에 대한 가치가 급격히 하락하고 있음을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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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이 될 때 우리는 술집을 나가 키치조지 공원을 산책했다. 아직 여름인데도 선선했고, 사람들은 많았다. 공원의 숲도 그 때나 지금이나 울창해서 나는 지금이 지금인지 십오 년 전인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마치 어제 같다"고 그도 고개를 저으면서 몇 번이나 내뱉는 말이 오히려 '지금'을 겨우 환기시킬 정도였다.

그렇게 살다보니 이런 일도 있구나 싶은, 너무나 익숙해서 오히려 실감이 되지 않는 시간을, 그날 우리는 얼마나 만끽한 것일까?
그리고 언제까지 이 섬뜩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우린 아직 괜찮겠지, 라는 느낌이 공유가능한 것일까?

여름날에도 어둠은 조금 늦을 뿐 확실히 찾아온다는 것을 알게 될 때까지, 우리는 공원을 걷고 또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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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도 헤어지기 아쉬워 라면집에 들렸을 때, 라면을 기다리는 동안 그는 '여자' 얘기를 했다. 사귀고 있는 다섯 명의 여자 중 한 명과 다음 달에 혼인신고를 할 예정이라고. 정말 여러 번 놀라는 날이었다. 겨우 정지되기 직전의 사고체계를 기동시켜 질문을 던졌다.

그 중에 누구?
이쁘지는 않은 쪽.
근데 왜?
뭐랄까 잘 잘 수 있어, 그녀와 함께라면.

단박에 납득이 되었다. 예전에 각성제를 먹으며 책을 읽던 그의 모습이 스치고 지나갔기 때문이다. 그에게 있어 다섯 명의 여자는 그의 불면의 날들의 깊이였고, 그녀는 그의 오래된 불면을 마침내 잠재워 준 사람은 아니었을까, 하고 납득되기도 했다. 물론 거의 동시에 그 네 명의 여자에게 도래할 각각의 상처들은 어떻게 할 생각인가 하는 의문이 생겼지만, 그건 그에게 묻지 않았다. 내게 물을 자격이 있는지 알 수 없었으니까.

우리는 묵묵히 남은 라면을 비우고, 역 앞에서 헤어졌다. 어제 그랬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