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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차트





일본에 온 이후 한동안 특별한 일이 없으면 꼭 본 프로그램 중의 하나가
카운트다운 TV”라는 음악 차트 프로그램.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가는 새벽 12 50, 나는 이런저런 일들을 하다가, 이런저런 일들을 중단하고 이 프로를 봤다.

 

처음에는 최신 유행가 차트를 알기 위해서 꼭 챙겨보곤 했는데, 일본에 온 날들이 길어지는 징후를 보이다가, 결국 길어지고 말았을 때부터는 챙겨보는 일은 없어졌고, 어느 순간부터는 보고 싶지 않게 되었다.

 

처음에는 5주 연속 1위가 없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아무리 강력한 음악도, 내 기억에 의하면 3주를 넘기는 일이 없었는데, 그건 일본 음악 마켓의 다양함을 보여주는 살아 있는 증거처럼 보였다. 물론 시간이 지나자 어떤 패턴이 읽혀졌다. 그리고 좀더 시간이 지나자 다 똑같이 느껴졌다.

 

그래서 이 프로를 보지 않게 된 것은 아니다. 진짜 이유는, 이 프로에 중간에 나오는 뮤직 라이버러리라는 코너 때문이다. 이 코너에서는, 갑자기 시간을 거꾸로 돌려서, 몇 년 전 이 맘 때는 이런 노래들이 차트에 올랐다는 것을 보여준다. 일테면 1996 9. 1999 5. 2002 8. 2003 11. 1998 1. 함께 따라서 과거로 돌아갈 때마다, 반드시 드는 의문. “그 때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더라?”

 

이렇게 음악을 통해서 과거와 만나는 것은 분명, 노태우 시절이라든지, 김영삼 시절이라고 하는 것보다, 혹은 롯데 자이언츠가 우승했을 때, 라고 하는 것보다는 훨썬 더 보편적이고 구체적이다. 80년대의 아우라를 떠올리는데, 87항쟁의 자료 화면보다는, 마이클 잭슨이나 마돈나, 듀란듀란의 뮤직 비디오 한방이 훨씬 더 효과적이다. 시대가 어느 쪽을 향해 움직이려고 하고 있었는지는, 보도 자료를 통해서는 알수 없는 부분이 많다. 그 당시에는 가장 첨단이었을, 그 촌스러움 속에 사실 많은 것들이 있는 셈이다.

 

하지만 적어도 일음을 통해서 시대를 기억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지난 십년 간 일음은, 보편적인 팝에서 떨어져나가 독자의 행보를 걸어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와 함께 한 지난 십년 간의 내 기억도, 부분적이고 파편적인 것 일색이다. 그리고 누구하고도 공유할 수 없는 기억이라는 것은, 실은 그다지 유쾌한 것은 아니다.

 

그게 다가 아니다. 내가 뮤직 라이버러리를 징그럽게 생각하게 된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세월때문이다. 10년의 세월. 이제 1990년대는 십년도 훨씬 전의 일이 되어버린 것, 그건 1980년대는 이미 20년 전의 일이 되어버린 것을 의미한다. 하필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가는 평화로운 시간에, 나이 먹는 것을 확인하고, , 이런 게 인생이구나 하고 한번 읖조려주는 건, 실은 정신건강에 상당히 좋지 않다. 마치 내 마음의 차트를 보는 느낌이니까.  

 

하지만 그렇더라도 십년 뒤에도, 또 이십년 뒤에도,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가는 평화로워야 할 이 시간, 나는 여전히 음악을 찾고, 듣고 있을 것이다. 밑도 끝도 없이 그저 그래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