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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생각

한국 보수주의에 대한 단상

 

 

 

 

결혼을 하고 자식이 생기면, 기본적으로 '보수'적 관점으로 세계를 보게 된다. 여기서 '보수'적이라 함은 내 가족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시점이다. 이런 시점은 가족 구성원 중 아내와 어린 아이가 강자가 아니라는 것을 여러가지 시행착오 속에서 깨닫게 되면서 확고해진다. 아무리 사회적으로 훌륭하더라도 가족을 내팽게 친 사람들(특히 남자)에게 쏟아지는 비난은 바로 자기 옆의 약자를 내팽개친 데에 대한 비난이다.

 

하지만 이러한 '보수주의'는 자기 가족에 전전긍긍하는 사이에, 내 집 밖에 존재하는 약자들에 대한 신경을 꺼버릴 위험성이 있다. 내 집 바깥에는 내 아내보다 더 약하고, 내 아이보다 훨씬 약한 아이들이, 할아버지, 할머니가, 그리고 이들을 자력으로 지킬 수 없는 무기력한 남자들이 무수히 존재하고 있다. 어떠한 사람들도 이들 약자를 안 보고 살 수 없다. 그리고 이러한 약자들은 내 가족들에게 있어서 충분히 '위험'할 수 있다.  

 

물론 내 집의 담을 더 높게 쌓고 성능좋은 총 한자루를 마련해 놓는 방법이 있다. 하지만 24시간 가족을 감시 체계 속에 놓아둘 수만은 없는 것이다. 아무리 운전을 잘 하고 좋은 차를 몰고 다닌다고 하더라도, 뒤에서 들이박거나 옆에서 과속으로 충돌해온다면 뒷자석에 앉아 있는 아이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 내 집 불단속을 잘 한다 하더라도, 이웃집에 번져오는 불을 막을 수는 없다.

 

보수주의가 자기 안에 머물지 않고 대리표상의 영역인 정치의 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은 바로 그러한 자각 때문이다. 자기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자기만의 노력으로는 불충분하다는 인식 때문에, 공공성 영역에 자신의 권리를 이양한다. 그 때 그들은 기본적으로 자기 생의 안전을 위해서, 불가피하게 약자(여기에는 북한도 포함된다)를 케어해야 한다는 정책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반대로 정치인들은 이러한 사실에 기반해(혹은 이용해서) 세금 인상 등을 합리화하며 다양한 정책을 만들어나갈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보수주의 정치의 이념은 기본적으로 창조나 창출에 있는 것이 아니라, 관리와 감사와 규제에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생의 안전에 초점을 맞추는 보수주의 정치 이념은, 때로는 그를 위해서는 어떠한 이념과도 대립하거나 타협할 수도 있어야 한다.  

 

써놓고 나니까, 새누리당은 보수도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좌파들이 이러한 정책을 펴온 것 같다. (종종 한국 좌파에서 느껴지는 보수성은 바로 거기에 있다.) 한국도 일본도, 심지어 미국까지도. 그렇다면 우파의 정치의 핵심은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