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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생각

페이스북과 정치성

 

 

 

 

시절이 하수상해서인가, 자기검열이 심해지고 있음을 느낀다. 

 

페이스북에 들어가면 미묘한 뉴양스의 차이를 지닌 글들이 서로 논쟁하고 있는 경우를 볼 수 있는데, 나는 종종 구별없이 <좋아요>에 클릭한다. 이건 열심히 쓴 글이라, 이건 나와 생각은 다르지만 생각해볼 만한 것이라, 이건 재미있어서, 이건 슬퍼서, 혹은 반가워서, 등등의 이유 모두가 <좋아요>로 하나로 수렴된다. 때론 <공유>도 하지만, 내게 그 의미는 모두에게 '공유'를 원한다기보다는 떠내려가지 않도록 하는 것 이상의 의미는 없다. 이런 식으로 자기 변명 같은 걸 하다가, 사상의 일관성 같은 것을 생각하다가, 내가 어느 쪽인지 묻다가, 그 반대쪽은 지울까 하다가 말다가, 누군가로부터 왜 그 딴거에 좋아요를 눌렀냐는 핀잔마저 들으면서, 결국 자기 검열 같은 말을 떠올리면서 치졸해지고 있다고 느낀다.

 

하지만, 동시에 거기에 강렬하게 저항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정치적 입장을 세우는 것에 저항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어차피 그건 불가능한 일이니까. 비-정치, 탈-정치, 무-정치가 모두 불가능한 세계에 있음을 모르는 바 아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행위야말로 가장 무서운 정치적인 행위 아니었던가. 친구맺지 않기, 사진 찍지도 올리지도 않기, 글 올리더라도 댓글 달지 않기, 무뚝뚝해지기, '미움받을 용기'를 가지기, 페북 탈퇴하기까지, 심지어 개인적인 레벨의 실패마저도 사회적인 장에 놓이면 하나의 '정치' 아닌가.

 

그렇다면 너는 어떤 '정치'를 하고 싶어하는가?

 

한마디로 말해 나는 내 페이스북에서 우파와 좌파, 큰 이야기와 작은 이야기, 공과 사, 한국과 일본, 일본과 미국, 순문학과 서브컬처, 아티스트와 아이돌이 같이 섞이는 게 좋은 것이다. 이건 세상이 원래 그렇기 때문이 아니라, 가상 공간이기 때문에 그렇다. 원래 실제 세상은 딱 내가 보이는 만큼의 크기 그 이상의 이하도 아닌 거 아닌가. 가상공간으로서 세계에만이 뜨거운 논쟁이 있는 한편, 냉소와 무관심이 섞여 있다. 진지함과 잡념. 번뜩이는 지성과 아무 생각없음. 그게 내게는 뭔가 좋아 보인다. 그리고 여기는 정치적 행위가 출발하는 지평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을 다 갖을 수는 없고 붙잡아 놓아도 시간에 의해 흘러간다. 모든 것을 진열하고픈 욕동은 모든 것을 진열할 수 없는 한계 속에서 하나의 점으로 좁아져, 착지하게 될 것이다. 하나의 점, 하나의 도장 같은 것으로.  하나의 숫자로 환원되어 1표로. 그 숫자 1에 절망하며 많은 날들을 보내게 될 것을 생각하면 우울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이해한다, 페친들의 정치성을.  그래서 <좋아요>를 누르지만 그것은 새로운 <좋아요> 에 밀려나고 말 것이다. 그렇다고 나는 내가 들여다보는 페북을 하나의 색만으로 칠해 재미없게 만들고 싶지는 않다.

 

만약 그렇다면 후배가 이런 링크 따위 던져줄 리 만무하다. 영원히 계속될 것 같은 '하루'의 개미지옥 시절을 단번에 회상시키는 다음과 같은 노래를. 그러니까 언제까지고 끝나지 않는 '세상의 끝'과 영원히 지연되는 '시작'의 공포. '희망'이라는 환영. 바뀌지 않는 지긋지긋한 내 모습을. 지금의 나를 만들었지만 지금은 나와 함께 있지 않는 시간을. 그 간극의 신비와 공포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