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에 26년만에 JFK를 통해 맨해튼에 왔다. 여전히 맨해튼은 복잡하고 더럽고 비싸고 비현실적이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나는 그저 담담할 뿐이다. 그게 조금 이상했다. 나이를 먹은 탓일까, 아니면 세상이 변했기 때문일까. 아마 둘 다겠지.
특히 후자와 관련해 구글과 우버가 있는 세상은 그렇지 않을 때의 세상에 비해 너무 편해졌다. 이제 '길을 잃어버리'는 일은 없겠구나 싶었다. 그러니까 이제 그런 표현은 스마트폰의 전원이 나갈 때나, 관념적인 표현으로만 쓰이는 것은 아닐까. 이제 길을 잃어버릴 걱정이 없는 나는 낯선 곳에서도 태평하게 길을 걷고, 레스토랑을 검색해 쌀국수를 먹고, 문득 로스코가 생각나 MOMA에 들려 그의 그림을 본다. 20세기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을, 나는 담담하게 해낸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26년 전 머물렀던 곳에 잠시 들렸다. 주소도 다 까먹어서 사전에 그 때 신세졌던 형에게 좌표를 찍어달라고 부탁했었는데, 그 형의 말대로 1층의 일식집은 딤썸 집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도 그때 여기에 있었다는 것이 전혀 실감이 나지 않았다. 늘 허겁지겁 집을 나서서 거리를 쏘다니다가 완전 녹초가 되어서 들어왔기 때문일까? 그래도 든든한 베이스캠프였고 거기서부터 시작된 인생의 줄기가 이렇게 시퍼렇게 살아있는데, 이렇게 낯설다니.
서서히 어둠이 내려앉는 거리에서 정처없이 서성이다가, 문득 어떤 기억과 만난다 :
그 때 이 거리에는 허름한 추리닝 바지를 입고 유리병에 든 스타벅스 커피을 마시며 담배를 피는 XX형(방장 형의 룸메이트)과 어린 내가 있었다. 카이스트를 나와 유학온 XX형은 '기'에 빠져서 언제나 세상을 초월한 듯한 눈빛을 하고 있었는데, 우리는 종종 집 밖의 거리에 쭈그리고 앉아서 담배를 폈다. 어느날 내가 극장에서 X-file을 봤다고 하자, 갑자기 눈을 반짝이며 프리메이슨 얘기를 꺼내며, 나 보고 책을 구해줄 수 없냐고 물었다.
다음날 나는 근처의 반즈 & 노블스에 가서 책을 훑어봤지만 프리메이슨 책은 찾을 수 없어서, 젊은 점원에게 물어봤다. 그녀는 처음에 여기에 그런 책은 지금 없다고 딱 잘라 말했는데 내가 낙담한 표정을 짓는 걸 보고 마음이 움직였는지, 1XX 스트리트에 가면 지금도 그 사람들이 모인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고 전해줬다.
그날 밤 나는 그 얘기를 XX형에게 얘기해줬는데, 그는 별로 가보고 싶은 생각이 없는 듯이 담배만 필 뿐이었다. 나는 그가 프리메이슨이 여전히 세계를 지배한다는 음모론의 진위를 따져묻기보다는 음모론 그 자체를 믿고 싶어하는 사람이라고, 그래서 기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맨해튼이라는 '바깥'에 있으면서도 여전히 '바깥'을 찾아헤매는 그 형을 보면서 나는 조금 질리기도 했다. '바깥'을 지향하는 삶의 벡터가 도달하는 지점이 결국 '기'인가, 하고. 그래서 한국으로 돌아올 때는 당분간 더 이상 어떤 '바깥'도 상정하지 않기로 단단히 마음 먹었던 것 같다. IMF 관리체제 하의 '안'이 설령 지옥이라도, 말이다....
......인적이 드물어지는 거리에 서서 그런 생각을 한 후에 터벅터벅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타임스퀘어에 들렸다.
그곳에는 최신형 전광판들로 눈부셨고, 그것을 보기 위해서 몰려든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26년 전의 타임스퀘어는 리뉴얼중이었는지 이렇게까지 밝고 사람이 많지는 않았는데 하는 생각을 하다가 인파에 섞였고, 그들을 따라 전광판이 한눈에 보이는 관중석에 자리를 찾아 앉았다.
멍하니 디스플레이 속에 전시되는 온갖 상품들, 서비스들을 둘러보는데, 그 중 한 디스플레이 속에 한국 식품 광고를 하는 뉴진스의 모습이 보였다. 그런가, 정말 많이 왔구나 싶었다. 그러니까 많은 세월이 지나 당시로서는 '지옥'이라고 생각했던 '안'이 맨해튼과 견주어도 그리 쳐지지 않을 뿐 아니라, 더러는 그 일부를 구성하고, 어떤 부분에서는 나은 것도 적지않음을, 나는 실감했다.
하지만 자랑스럽다기보다는 뭔가 씁쓸한 느낌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 감정은 그 과정에 가로누워 있는 갖은 노력과 희생에 대한 부채감 때문은 아니었다. 내게 그건 또 하나의 '바깥'이 상실이기도 했다. '바깥'이 없는 세계를 산다는 것, 그것은 마치 창이 없는 방에서 사는 것처럼 깝깝하지 않겠는가? 한참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앉아 있다가 숙소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다음날 오전 버스를 타고 이타카로 왔다. 대학은 고원에 위치해 곳곳에 폭포가 있고, 바로 그 주변에 당분간 지내게 될 집이 있었다. 거기서 암것도 없는 20대 때와는 완전히 다른 생활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