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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파자마 파티

 
코로나 팬데믹 때부터 아이 티를 조금씩 벗어나기 시작한 딸내미가 어느새 중학생이 되더니, 주말이면 파자마 파티를 한다며 친구네 집에서 자고 오곤 한다. 실제로 예쁜 파자마를 챙겨서 간다. 
 
딸내미는 열살 때까지 혼자 있지 못했다. 아내가 외출해 둘이 있을 때, 내가 담배 피러 나가면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는 나를 지켜보며 손을 흔들곤 했다. 딱히 무엇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한 공간에 있으면 됐다. 그걸 아내는 '분리 불안'이라고 했고, 동에서 운영하는 청소년 상담센터에서 놀이치료를 받도록 했다. 일주일에 한번 아이는 선생님과 만나서 놀았는데, 가끔은 내가 셔틀을 했다. 
 
코로나 팬데믹이 발생해 학교에 갈 수 없게 되었는데, 마침 반배정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오히려 잘 되었다고 본격적으로 방에 틀여박히더니, 덕질을 시작했다. 유튜브와 게임과 유튜브와 게임의 순환 세계. 간혹 거실에 나와 IP TV로 하이큐와 주술회전으로 바람을 쐬곤 하지만, 결국 방 침대에서 닌텐도 스위치와 스마트폰과 테블릿을 왔다갔다 한다. 답답하지 않냐고 질문에 '전혀'라는 짧은 대답만이 돌아올 뿐이었다.
 
한 일년을 그렇게 지내다가 학교가 열려 다시 학교를 가게 될 때 즈음 사춘기가 시작된 모양인지, 돌아오면 "학교를 불태워 버렸으면 좋겠다!"라던지 "이미 세상은 망했어!"라는 부정적인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기 시작하더라. 물론 욕도 많이 섞어가면서. 아내가 부정적인 감정을 참지 말고 표현하는 것이 좋다고 하니, 아이의 입은 더 거칠어지더라.  이제는 간혹 둘이 있으면 "아빤 오늘 안 나가?"하고 묻는다.  같은 공간에 있는 것이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친구들과 함께 홍대를 갔다가 오는 길에 마라탕을 먹고 돌아오고, 롯데월드에 가서 하루종일 놀이기구를 타고 오지만, 공부는 뒷전. 
 
아빠로서 한숨이 나오고 착찹한 감정을 금할 수 없지만, 딸 말대로 "이미 망한 세상"에서 대체 뭘 바라는가 싶기도 했다. 지식? 학벌? 교양? 계급?  스카이캐슬을 통해 진입할 수도 없을 뿐더러, 진입한다고 해도 그 자체로 행복이 보장되지도 않는 불투명 속에서, 내 자신의 '불안'만으로 아이를 닥달할 수 있겠는가? 닥달한다고 이미 내 말을 '아, 그래?' 정도로 받고 있는 내 아이에게 통할련지? 
 
그래, 아이는 지극히 당연하게 부모와 분리되고 있는데, 이제는 반대로 내 쪽에서 아이와의 분리가 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세상과 삶의 불투명 속에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아이에게 생각보다 더 많은 것을 의지하고 기대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실은 내 삶은 이미 망했으니 네 삶이라도 챙겨야겠다고 나선 것은 아닌지?  이런 나의 조짐을 직감적으로 눈치 챌 때마다 아이는 눈을 똥그랗게 뜨며 말한다.  "저한테 왜 그러세요?"
 
그렇게 이미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아이의 머리가 컸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 어느 날의 일이다.
 
파지마 파티를 하러 간 다음 날 아침, 좀처럼 울리지 않았던 집전화가 울렸다. 전화를 받은 아내의 목소리를 통해서 장인어른이 손녀딸의 안부를 묻는 상황이 전달되었다. 아침부터 티비를 켜니 간밤의 이태원에서의 일이 다급하게 전달되었다. 스마트폰을 통해 기사를 살피니 보통 일이 아니다. 살짝 떨리는 손으로 딸내미에게 전화를 걸어보지만 받지 않는다. 아, 받지 않는다. 
 
이미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의 입장을 고려해보면, 거기에 있었더라도 전혀 이상할 게 없지 않은가?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머릿속에 하애졌다. 아내와 내가 번갈아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았던 딸내미의 스마트폰으로부터 아내에게 전화가 걸려온 것은 5분 정도 후였다. 잠을 방해받은 아이의 짜증내는 목소리가 눈에 선했다. 이렇게 반가운 짜증내는 목소리가 또 어디에 있단 말인가? 
 
아이가 툴툴거리며 집으로 오는 동안, 그 짧은 시간 동안의 내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내 생각의 핵심은, 거기에 내 딸이 있더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십대부터 이십대의 모든 청년들이 그 순간에 거기에 있더라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는 생각. 그건 세월호 때부터, 혹은 그 이전부터 내게는 매우 당연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때문에 이 사건들은 모두 내게 어느 정도 상처가 될 수밖에 없다. 친구네 집에 파자마 파티를 하러 나간 아이가  전혀 엉뚱한 곳에서 엉뚱한 일을 벌일 가능성이 전혀 없다면, 그것은 과연 살만한 사회일까? 혹은 그 아이는 정말 '바르게' 크고 있는 것일까? 
 
물론 이런 질문에 대한 '단호한' 대답은 나도 하기 힘들다. 이 단호함에 대한 대가는 만만치 않음을 이제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는 생각보다 훨씬 여러가지 형태의 '돌이킬 수 없는 길'이라는 폭탄을 꽤 많이 내장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으며,  그 앎만큼 아이가 내 머릿 속에 그려진 '안전'하고 '안정'된 길로 갔으면 하는 바람을 나도 완전히 버리지 못했다. 모든 것을 아이의 '운명'에 맡길 만큼, 내 마음이 달관의 경지에 도달한 것도 아니고.  
 
"아니, 내가 거기 가면 간다고 했겠지, 왜 말하지 않았겠어? 게다가 난 사람 많은 곳은 딱 질색이라고!"
 
들어오자마자 한마디 툭 던지고, 제 방으로 들어가 다시 이불 속에 들어가는 딸내미.

이미 망한 세계를, 그녀는 그녀대로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