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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생각

천안문 20주년




  천안문 사건 추도 집회가 열린 4일밤 빅토리아 공원은, 촛불을 손에 든 시민으로 가득 찼다.
  = 홍콩, 아시히신문, 2009년 6월 5일 0시 33분.



촛불 시위가 한국의 국가 이미지를 낮춘다고 종종 말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은 보여주는 한장의 사진이 여기에 있다. 일본의 아사히 신문(인터넷판)에 실린 이 사진에는, 중국 정부에 대한 비판과 견제의 의미가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추모 행사에 대한 동경이나 질투 같은 것도 느껴진다. 왜 일본이 지금의 일본일수 밖에 없는가를 보여주는 한장의 사진이기도 하다. 

20년전 천안문 사건이 중국이라는 국가의 이미지에 손상을 입혔다면, 그것은 공산당 정권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일 뿐, 실제로 탱크 앞에 선 한 중국인이, 중국, 그리고 중국인에 대한 이미지를 얼마나 긍정적으로 바꿔놓았는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사건에 대해 그냥 넘어가는 중국인들과, 촛불을 켜고 추모를 할 수 있는 중국인, 이 둘 중 어디에서 중국의 미래를 찾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굳이 말할 필요가 없겠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미국에 대해서 긍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일년 365일 미국 백악관 앞에서 진을 치고 터무니 없는 시위를 할 수 있고, 세상이 뭔가 잘못 되었다고 외치는 마틴 루터 킹과 오바마의 뜨거운 연설과 그것을 들으러 수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그 자유와 대담함, 그리고 관용 때문인지, 도청기를 설치한 닉슨이나 귀를 틀어막은 부시 때문은 아니다. 또 단순히 맨하튼의 고층 빌딩과 보스톤의 하버드와 와튼스쿨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 도시 한복판이나 시골 한구석에서 여전히 60년대 삶의 방식을 고수할 수 있는 자유가 있기 때문에 미국에 대해 호감을 갖는다. 영어의 나라지만, 세련된 영어를 못하더라도 그냥 그렇게 살도록 내버려두는, 그런 미국의 가능성을, 우리는 믿는 것이다.

물론 그런 미국이 현재의 미국을 이렇게 곤란하게 만들었다는 자성의 소리와, 동시에 한국의 경쟁력을 배워야 한다는 말이, 미국인의 입에서 종종 흘러나오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미국인들이 자신의 삶의 스타일을 버리고, 자동차와 텔레비전 좀 잘 만들게 된 한국을 모방하려고 기를 쓰고, 한국으로 이민을 오겠다고 줄을 서지는 않을 것이라는 걸, 80년대의 미국은, 일본과의 관계 속에서, 이미 보여준 바 있다.     

그렇다고 촛불을 미화할 생각은 없다. 특별히 내세울 만한 거라고 생각되지도 않고,  또 그것이 대안문화로서 적절한지 어떤지는 좀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게 한국의 국가 이미지를 망치는 일만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해둘 필요는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