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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자유 수영 레인

20년 동안 수영을 했지만 오랫동안 나는 평형과 접영을 할 줄 몰랐다. 한번도 배운 적이 없었고, 배우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으니까.

 

스포츠센터에서 수영을 처음 배운 것은 유학 직전이었다.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일본에 가기 전 한달 동안, 나는 동네에 새로 생긴 스포츠센터 지하에 있는 수영장을 딱 한달 동안 다녔다. 아침 6시 초급반. 한 여름인데도 물은 너무 차가웠지만 어깨가 떡 벌어진 여자 강사님의 우렁찬 소리에 후다닥 들어가 발차기를 하고, 호흡을 배우고, 자유형과 배형을 배웠더니, 한국을 떠날 날이 다가와 있었다.

 

일본에서 수영을 시작한 것은 순전히 살기 위해서였다. 어느 날 몸을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허리가 아파서 패닉에 빠진 적이 있었는데, 그 원초적인 공포가 초급자인 나를 수영장으로 인도했다. 석사 1학년 때부터 살게 된 기숙사 옆에 정말로 큰 사회 체육 시설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다른 세계라고 선을 긋고 있었는데, 아픈 이후로 매주 한두번씩  250엔을 내고 한두 시간 정도를 보내다 왔다. 자유형을 하다가 지치면 걷고, 걷다가 심심하면 수영하는 식이었는데, 의외로 나 같은 사람이 많아서 그리 큰 부담이 되지 않았다. 간혹 라인 한 쪽 끝에는, 아예 노인들이 걸을 수 있도록 바닥에 수중 매트를 깔아놓는 경우도 있었다. 

 

그 때문인지 내게 있어 풀이라면, 뭔가 재촉하지 않는, 내 몸을 인지하는 유유자적한 시간이 흐르는 공간의 이미지로 기억된다. 주변에 사람들이 있어도 모두 자기 페이스대로, 잘 하는 사람은 잘하는 대로, 못 하는 사람은 못 하는 대로, 걷는 사람은 그냥 걸으면 되는, 그런 공간으로.  그것은 사회 체육 시설만이 아니라, 대학 내 스포츠센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역시 살기 위해 일년에 10만원 정도 되는 돈을 내고 다닌 스포츠 센터에서도, 학생과 직원 등이 다들 각자의 페이스대로 수영하거나 걷고, 사우나에서 땀을 흘렸다. 도서관에 있다가도, 슬쩍 나가서 수영을 하러 나갔다가 오는 것은 그 시절의 행복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문득  수영을 잘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동네 사회체육 시설 수영장의 시민 강좌를 신청해서 다닌 적이 있다. (아마도 그 때 하루키의 철인삼종 경기 운운하는 에세이를 읽었던 모양이다)  내 예상과는 달리 강사는 할아버지였다. 그 할아버지 강사는 정말로 온화한 표정으로, 그리고 그리 많지 않은 말로 수강생들을 가르쳤다. 무리하지 않게 몸에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강사님과 수강생 모두 목표는 그리 높지 않았지만, 모두들 즐거운 표정으로 시간을 보냈었다. 덕분에 나도 좀 더 몸에 힘을 빼는 법을 익했지만, 동시에 수영을 더 잘 하고 싶다는 생각도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렇게 또 몇 년이 지나 한국에 와서 겨우 여유가 생겨서 학교 수영장을 끊었는데, 뭔가 달랐다. 먼저 자유 수영 레인은 달랑 하나. 나머지 레인에는 어깨가 떡 벌어진 수영 강사 선생님들이 레벨 별로 아이부터 사회인을 지도하고 있었다. 중급 레인부터는 때로는 시합을 하기도 하고, 아예 오리발을 사용했고, 강사 선생님들의 독려하는 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그래도 난 과밀한 자유 수영 레인에서 꿋꿋하게, 그리고 묵묵히 수영을 이어나갔는데, 어느날에는 막 수영을 시작한 듯이 보이는 학생이 내게 와서 가르쳐 달라고 하더라. 내가? 그렇게 일언지하에 거절했는데, 그래도 남들 눈에는 내가 잘 하는 것처럼 보이기 시작한 것인가 싶어서 조금은 기분이 좋아지기도 했다.

 

코로나 시절 불가피하게 동네 스포츠 센터로 옮겼는데, 내가 수영을 잘한다는 것은 역시 환상에 지나지 않음을 5분도 되지 않아 깨달았다. 그래도 참고 묵묵히 이른바 '할아버지 수영'을 해나갔는데, 어느날 그런 나를 도저히 더이상은 참고 봐줄 수 없었던 한 분이 나타나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가르쳐주시더라. 물론 고맙다고 인사하면서 배운 대로 하려고 해보지만, 세살 버릇을 한번에 바꾸는 게 그리 쉽겠나.

 

그러자 이번에는 스포츠 센터에서 1년 끊으면 서비스로 강습을 넣어주겠다고 해서, 기왕이면 받아보지 하고 초급반으로 다시 들어갔다. 아, 곁눈질로만 보던 어깨 떡 벌어진 강사님께서, "우리 회원님은 팔을 그렇게 하시면 안돼죠, 이게 뭐야?"하면서 아주, 친,절,하게 가르쳐주시기 시작했다. "우리 회원님은 일단 평행 발차기부터~".  "자유형 왼 팔이 이게 뭐야?" 지금 오십견 때문에 왼팔이 안 올라간다고 푸념하니, 그래도 받아주신다. 

 

그렇게 한 1년 가다 말다 가다 말다 하는 사이에,  같이 시작한 사람 중 일부는 중급반으로 가고, 일부는 아예 사라지고 나중에는 거의 혼자 남게 되자, 개인 레슨하듯이 속성으로 접형과 오리발 사용법을 가르쳐 중급을 보내버리더라. 중급반에 가니, 다들 알다시피 진정한 뺑뺑이가 시작되고. 

 

그렇게 한국의 수영에 적응해버리는 사이에, 완벽하지는 않지만 애먹었던 평영과 접영도 되고, 살도 빠지고 어깨도 조금은 펴졌는지 모르겠지만, 그 한적하고 평화로운 마이페이스의 공간이었던 풀의 이미지는 사라져버리고 만 것은 아닌가 싶어 조금은 쓸쓸하고 허전하다. 더 정확하고 빠른 '자유형'을 가르치는 수영 강사님들과, 헉헉대면서도 군말없이 거기에 응하는 회원님들로 점령된 풀에, 하나 밖에 없는 '자유 수영 레인'처럼 오늘날 한국의 '자유' 수준을 말해주는 것이 또 있을까?  

 

그런데 일본의 풀은 아직도 그렇게 각자 마이페이스로 수영을 하고, 그 할아버지는 여전히 초급반 강사를 할까? 다음 출장 때 함 들려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