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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철 기억1

 

▶ 신해철에 대해서 써야지, 써야지 하면서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나갔던가.....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신해철 음악이 나오면 언제나 생각한다. 그가 그렇게 이 세상을 떠난 이후부터 몇 년간 차에서 신해철을 들으면 언제나 그에 대해서 써야겠다는 강박에 빠졌지만, 그것이 의지로 바뀌기는 결코 쉽지 않았다. 왜일까.

 

▶▶  그것은 의외로 내 젊은 시절에 그의 존재가 단단히 박혀 있기 때문이다. '의외로'라는 말을 쓴 것은, 그의 음악을 내가 아주 좋아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자발적으로 그의 음악을 찾고, 반복해서 듣고, 외우고, 내 노래로 만들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오히려 반대였다. 매우 우연한 기회에 나는 그에게 인도되고 있었다. 

 

▶▶▶  91년 2월이 그러했다. 고등학교 졸업식날 강남역 언저리에서 친구들끼리 고기를 먹고 싱겁게 헤어지려는 순간 만난 선배의 손에 이끌려 간 강남역 시에스타에서 나는 정말 지근 거리에서 신해철을 봤다. 난생 처음 가보는 나이트클럽에, 처음 만난 여자와 처음 '블루스'라는 것을 추는데, 뜻밖에도 신해철이 노래를 하고 있었다.  곱상한 외모의 신해철과 내 앞에 있는 여자의 얼굴을 번갈아보면서, 나는 그녀에게 가만보니 신해철 닮았다고 하는, 매우 무례한 멘트를 날렸던 것을 지금도 선명히 기억하고 있다.

 

 ▶▶▶▶  선배 친구의 여동생이자 나의 동갑이었던 그녀는 재수의 길로 접어들고 있었고, 나는 대학 등록을 마친 상태였다. 하지만 그녀는 나보다 춤을 잘췄고, 이마에 땀이 송송 맺힐 정도로 열중했고, 그 순간을 즐기고 있었다. 그녀만이 아니었다. 신해철은 마치 몇 년 동안 나이트에서 노래한 것처럼 노래만 열심히 불렀고, 스테이지에 올라온 거의 모든 사람들은 그의 노래에 맞춰 열심히 춤을 췄다. 그들에 비하면 당시의 나는 나이트 클럽이란 곳이 어떤 곳인지를 관찰하러 온 구경꾼에 지나지 않았다. 그녀가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춤을 췄다면, 나는 매우 어정쩡한 포즈로 이제부터 시작될 대학 생활을 간보고 있었을 뿐이다.

 

12시가 되면 돌아가는 신데렐라인 양, 그녀는 12시가 되기 전에 클럽을 나왔고 선배와 나는 그녀를 집까지 바래다 주기로 했다. 우리는 강남대로에서, 논현동 방향으로 걸어갔다. 선배는 너스레를 떨었고, 그녀는 말이 없었다. 나는 그녀가 신해철이 닮았다는 말을 한 것을 후회했다. 언제까지 걸어가야 하는가, 하는데 갑자기 그녀의 집에 도착했다. 단독주택의 뒷문으로 들어가는 전세집이 그녀의 집이었다. 그녀는 잠깐 들어갔다 나와서 내게 말했다. "이게 원래 내 모습이예요."  그녀의 시선이 자신의 운동화를 향해 있었는데, 나는 그 말을 듣고서야 그녀가 그 때까지 하이힐을 신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 정말 91년초의 신파랄까 만화 같은 삶을, 내가 진짜 살았는지, 신해철을 들으면서 나는 생각해보게 된다. 이 스토리 자체가 너무나 드라마틱해서, 오히려 현실성이 너무 떨어지지 않는가. 게다가 사실 그 때 손을 잡았던 그녀의 얼굴도 이름도, 강남역 시에스타가 사라지기 전에 이미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았는가. 그건 아마 상대도 마찬가지일거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날 그녀의 얼굴 너머로 봤던 솔로 가수 신해철의 곱상한 얼굴만은 여전히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나이트에서 열창하는 꽃미남 가수 신해철. 내 기억 속에서 그는 그렇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