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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새차 세차

 
1.
 
지난 일요일에 작은 형이랑 세차를 했다.
 
사실 한달 정도 전에 십년 넘은 차를 바꿨는데, 그 차의 구입 과정은 여러가지로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 코로나로 인해 대기 시간이 1년을 넘어가는 와중에 담당하던 영업사원이 은퇴를 해야 했고, 새롭게 배정된 영업사원과는 합이 맞지 않았다. 출고 일시 문제로 몇 차례 전화로 다투고 거의 포기할 시점에 나온 차는, 검수 과정에 하자가 있어서 돌려보냈다. '대체 차가 뭐라고, 그깟 차 하나 때문에'라는 생각이 안 들 수 없었는데, 그 때마다 작은 형은 차의 중요성에 대해서 집요하게 환기시켜줬다. 
 
사실 구매 때부터 형은 명실상부한 지름신으로서의 역할을 아주 충실히 수행해, 형과 통화 한번 하고 나면 차종이 바뀌고, 또 한번 통화하면 차의 옵션 등급이 바뀌어 어느틈에 애당초 생각한 예산을 훌쩍 넘어버리게 되었다. 넌 고속도로로 출퇴근하잖아, 사고 함 나봐, 그럼 어떻게 되겠어......너 전의 차도 십년 넘게 탔잖아, 이번 차도 십년 넘게 탄다고 생각해봐......남자한테는 결국 차밖에 없어....... 
 
지름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차가 나올 때 즈음 썬팅지 브랜드부터 하부 소음 방지까지 치밀하고 꼼꼼하게 안내하더니, 차가 나와 이제 끝났나 싶었는데, 이번에는 전화로 세차 얘기를 꺼내더라. 새차 나오면 2년 동안 기계 세차 하면 안되는 거 알지? 갚아야할 돈 상환 계획에 머리가 지끈거리는데, 이번에는 세차라니, 세차라. 하긴 새차도 세차를 하긴 해야지. 그러자 형이 세차 방법을 가르쳐준다고, 코인 세차장의 약도를 보내온다. 좀 멀다.
 
하긴 동네에 있었던 코인 세차장에 건물이 들어서면서,  새로운 세차장을 찾긴 찾아야 했다. 전의 차는 주유소의 기계 세차로 충분했는데 이 또 무슨 일인가, 그냥 전기차 대중화될 때까지 중고차 하나로 버틸 걸 그랬나 싶은 후회가 들었지만, 시간을 돌릴 수 있는 능력이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친절한 지름신의 애프터 서비스를 끝까지 잘 받는 것 뿐.
 
2.
 
그리하여 약속된 일요일 오후, 새차의 세차를 하러 나섰다. 가로수들이 만들어내는 샛잎들의 반들거림이 눈부신 청명한 봄날이었다. 내비가 인도하는 세차장은 생각보다도 먼 곳에 있어서,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고, 그 때마다 그런 나와는 반대로 동생의 새차 세차를 즐기려는 형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살고 있고, 내 자신의 새차 세차를 즐기지 못하는 내 자신은 과연 어떻게 되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그렇게 세차장에 도착하니, 세차장 안에는 세차 하는 차들로 가득 차 있었어 잠시 대기해야 할 정도였다. 솔직히 놀랐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주말에 굳이 시간을 내서 세차를 한다는 사실에. 물론 새차만이 있는 것은 아니었는데, 그래서 더욱 거의 문화 충격 같은 걸 받았다. 
 
생각해보니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거의 세차를 하지 않았다. 20만Km를 넘긴 후엔 기계 세차만 한 번 정도 했을 뿐, 코인 세차장에 가서 내부까지 진공청소기로 돌린 적은 없다. 때로는 가족이 타고, 직장 동료가 탔지만, 지저분하다고 타박 받은 적은 없다. 어쩌면 차가 낡아가니, 다들 관대해진 것인지도 몰랐다.
 
형은 이미 도착해서 한 슬롯에서 형수님 차를 세차하는 중이었는데, 내가 슬롯을 찾아 들어가자 다가와서 거품이 가득 찬 플라스틱 통과 거품 솔 장갑을 건내줘서 깜짝 놀랐다. 나는 주로 코인 세차장에 장착된 거품솔을 사용했는데, 형은 아예 자기 도구를 챙겨온 것이다. 당구장에서 자기 큐를 꺼내는 사람은 본 적이 있어도, 자기 거품 솔을 쓰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이 사람이 내 친형이라니!
 
형이 알려준 대로 고압세척을 한 후, 손에 딱 붙는 거품솔로 차를 닦다보니 나는 어쩌자구 이렇게 큰 SUV를 사버렸을까 또 다시 후회하며, 얼른 1년이 후딱 가서 속 편하게 기계 세차를 할 날을 기다리게 되더라. 사는 순간부터 가격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차를 위해, 왜 인간이 이런 개고생을 해야 하는지, 차는 그저 차일 뿐이라는 큰 형의 생각에 다시금 동의하면서, 거품을 내고, 거품을 닦고, 왁스세차를 하고, 하부 세차까지 마친 후,  물기가 뚝뚝 떨어지는 차를 형 차 근처에 내부 세차를 하는 곳으로 옮겼다. 
 
온라인 쇼핑을 통해 산 세차용 타월로 물기를 닦아내려고 하는 그 때, 작은 형이 와서 뭔가를 내밀었다. 유리창 닦을 때 쓰는 끝이 실리콘으로 된 물기털이. 오, 이런 게 있다니!  나는 세차장에 비치된 작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SUV의 지붕부터 찬찬히 물기를 털어내면서, 형이 어떤 사람인지 다시금 생각했다. 차라는 사물에 대한 애착과, 그 사랑을 실천하기 위한 또 다른 사물에 대한 애착에 대해서.
 
형 안에는 일찍부터 사물에 담긴 가치에 대한 존중과 이를 몰라주는 사람들에 대한 분노가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있었다. 그것은 비단 차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었다. 동전부터 장난감, 전자기기, 집에 이르기까지 형을 둘러싼 사물들은, 형의 노력과 인생 전체였다. 그건 무계획적 소비의 결과물로서 구입된 내 생활 세계의 사물들-그래서 언제 버려도 이상할 게 없는-과는 그야말로 정반대의 세계라, 나는 그것을 뭐라 표현해야 할지 여전히 잘 모른다. 
 
잘 모르는 것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에 마음도 피곤해져 서둘러 세차를 마칠 때 즈음, 형이 와서 뭔가를 건냈다. 뭔가 하고 봤더니 세차 용품들이다. 실리콘 물기털이는 사지 말라고, 자기가 사다준다고 하며 음료수도 건내준다. 아, 이런 것이 진정한 지름신의 애프터 서비스 경지인가 싶어 할말을 잃을 때 처음으로 형이 내 차 문을 열고 스캔하더니, 역시 차 좋네, 하고 말한다. 나는 우리 세 식구 타기엔-실은 내가 거의 출퇴근용으로 독점하기엔- 너무 큰 차라 부담스럽다고 받아쳤지만, 형은 들은 척도 안 한다. 
 
형의 세계에서는 인생에서는 단계가 있고 지금 단계에서 사야 할 차가 있는 것이다. 형은 절대 그 단계를 벗어나는 소비를 한 적이 없다. 형의 최초의 차인 엑셀 중고차 때부터 SM5를 거쳐 지금의 그랜저에 이르기까지, 수도권 위성 도시의 아파트 전세부터 강남의 40평대 아파트에 이르기까지, 형은 그 단계를 충실히 잘 밟아왔다. 반면 나는, 솔직히 지금 내가 어떤 단계에 있는지 잘 모른다. 나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것인지, 실패한 것인지,  앞으로 더 잘 될 것인지 그렇지 않은지, 잘 모르겠다.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나는 내 인생의 대부분을 그런 단계를 거치는 인생을 빗겨서 살아오는 데 썼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려고 노력할 것이라는 정도 뿐이다. 형과 남들이 현재의 나를 어떻게 보던지, 말이다. 
 
그래도 때로는 형의 말에 나를 내어주기도 할 것 같다, 이번처럼. 나는 '단계'보다는 인생의 '흐름'이라는 말을 더 좋아하고, 나를 이끌어온 흐름에 나를 맡기는 데에 나름대로의 즐거움을 찾아왔다. 어쩐지 이번에는 그런 흐름이었다고, 나는 생각하기로 했다.
 
3.
 
세차를 마치고 각자의 차를 타고 가던 도중에 형으로부터 전화가 와서, 이제부터 운동으로 가야 한다고 여기서 헤어지자고 한다.
 
그래, 잘 가고.
 
그렇게 순식간에 내 앞에 있던 형의 차가 사라지자, 잊고 있었던 새차의 새차스러움이 갑자기 느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은 뭔가 욕망과 소원을 달성했다는 뿌듯함이라는 감정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내게 새차의 새차스러움은 번잡하기 그지 없을 뿐만 아니라, 그럼에도 내 만족은 이것으로 실현될 수 없겠다 싶은, 아득하게 깊은 늪에 빠진 것 같은 감정을 재확인시켜줄 뿐이었다. 
 
그럼 대체 넌 뭘 원하는데?
 
여전히,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