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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생각

그의 시를 읽으며 견디는 며칠...

 

 

너는 금속 세공사의 아들이었고 너는 아파트 수위의 아

들, 나는 15톤 덤프트럭 기사의 아들이었으므로 또 새봄

이 온 데다 공업고에 가야 했으므로 우리는 머리색을 노

랗게 바꿔야 했다

 

박 준, 잠들지 않는 숲,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문학동네, 2012 

 

 

"또 새봄이 온 데다" 바빠져, 밀린 일을 하기 싫어 빈둥거리며 시집을 읽다가, 위의 구절에서,,,

 

뭐 단순히 금수저/흙수저 얘기로 읽힐 수도 있겠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뭔가가 바로 "또 새봄이 온 데다"이다. 

 

그러니까 "~의 아들이었으므로 공업고에 가야 했다"라는 흔한 담론의 질서에, 시인은 "또 새봄이 온 데다"를 슬며시 껴넣음으로써, 담론의 질서를 뚫고 나가 이를 가지고 논다.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너희들은 모르지, 공업고에 가면 머리색을 노랗게 바꿔야 한다는 걸.

 

그러면 머리색을 노랗게 바꿔야 한다는 것은 또 무슨 뜻인가?  그것은 이 아이들에게 바꿀 수 있는 것은 그저 "머리색"뿐이었다는 뜻이기도 하고, 꽉 닫힌 세상의 냉혹함에 직면한 아이들이 여전히 작은 것 하나라도 바꾸고 싶어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좁은 길 가장자리가 소란하고 밝다'는 첫행이 괜히 필요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시는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 왜 골목길의 수많은 물품 중에서 시인은 "남성용 스킨"과 "대추나무 도장", "전자식 만보기"에 집착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도 시인의 아버지와 어떤 관련이 있을 듯 싶다. 하지만 이 시 안에 시인의 아버지, 혹은 시인의 아버지에 대한 태도를 알 수는 없다. 시집을 넘겨본다.

 

시인은 여러 군데서 아버지를 언급한다. 그 흔적들을 조합해보면, 그의 아버지는 덤프트럭이나 마을버스를 몰았고, 어머니가 눈썹 문신을 그렸다는 이유로 "밥상을 엎으시'기도 했다(눈썹-1987). 하지만 시인의 기억 속에 가장 강렬히 남아 있는 아버지의 모습은 "폐가 아픈 아버지"(꼬마)가 "살아생전 마음대로 죽지도 못"(파주)하고, "혼자 살"면서 "목울대를 씰룩여가며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던 모습이었다. 아마도, 그리 많지 않은 나이에 세상을 뜨셨을 가능성이 높다."폐가 아픈 일도/이제는 자랑이 되지 않는다"(슬픔은 자랑이 되지 않는다)고 하니.....

 

......그러고보면, 이 시집 해설에서 허수경이 난데없이 김현을 호명한 것도 어느 정도 알 것 같다. 허수경이 호명하는 것은 단순히 김현이 아니라,기형도를 쓴 김현이며, 이는 그녀가 박 준에서 '아버지를 쓰'는 기형도를 봤다는 뜻이기도 하다. 무조건 자의적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그는 기형도보다는 더 낮은 곳에 있다는 것을, 그의 유머가 말해준다. 그는 기형도처럼 비장하기보다는 유머러스하고, 사랑을 쓰기보다는 사랑을 하기에 능한 것처럼 보인다. 그는 슬픔 속에 자신을 봉인하지 않고, 잃은 것과 잃어갈 것을 충분히 애도하면서, 이 알 수 없는 인생의 슬픔을 자랑하며 팔지 않을 수 있는 길을, 하나 찾은 모양이다. 시쓰기로.

 

하지만 과연 그것이 가능한지, 나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나는 분명 그의 시가 좋아졌다, 그의 시로 며칠을 먹을 수 있을 것 같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