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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생각

코끼리는 자신이 크다는 걸 잊지 않는다.





에반스 : 권력 덕분에,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믿을 수 없게 되지. 남자는 그런 거야. 이쯔코. 돈이 있는 남자는 자신의 돈 때문에, 여자의 마음을 믿을 수 없게 돼. 그렇다고 무작정 구두쇠가 된다고 해서 돈을 가지고 있는 이상 암 것도 해결되지 않네.
이쯔코 : 남자는 그럴 때 어떻게 하면 돼죠?
에반스 : 단지, 무작정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여자를 위해서 낭비하면 되는 거야. 다이야몬드 목걸이를 사주거나, 실크 모피를 몇 벌, 신형 캐딜락, 요트......
이쯔코 : 그런 건 조금도 갖고 싶지 않아요.
에반스 : 물론 나는 그런 부자는 아니야. 그러나 내가 할수 있는 작은 선물을 너는 완강하게 받으려고 하지 않아.
이쯔코 : 왜냐면 나는 창녀가 아니거든요.
에반스 : 그 한마디로 모든 게 끝이군. 그러나 나에게는 권력이 있어.
이쯔코 : 그것을 잊는 건 어렵지요. 코끼리가 자신이 크다는 걸 잊고, 택시를 타보려고 시도하는 일 따윈 없을 테니까요.

    ■ 미시마 유키오, 여자는 점령당하지 않는다. 1959년




미시마는 생애 적지 않은 수의 희곡을 썼고, 그 희곡 중 일부는 뉴욕에서 공연되었다. 하지만 미국에서 공연되어 호평을 받은 미시마의 연극은 주로 일본의 전통극인 노의 현대적 번안처럼 미국인이 기대하는 일본적 성격이 강한 작품으로 한정되었고, 위의 작품처럼 미국의 점령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있는 작품들은 미국인에게 소개되는 일은 없었다.
 
암튼 위의 작품에서 미시마는, 미국을 자신이 크다는 걸 잊지 않고 있는 코끼리로 비유하고 있는데, 포인트는 미국이 코끼리처럼 크다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코끼리처럼 크다는 것을 언제나 잊지 않고 있다는 데에 있다. 이런 식의 존재의 양태를, 그는 다른 지면에서 "지나치게 존재한다 over-exist"는 말로 설명했다. 즉;

"존재는 덧없는 것이며, 본래 없어도 되는 것이며, 시시각각 변하는 과도적인 것이며, 무에 대해 상대적인 것이므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대로 맡겨두면 좋고, 존재에 대해서 골머리를 썩일 필요는 없다고 하는 것이, 불교를 통해 배양된 일본인의 기묘한 생각"인데,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자신의 존재 여부를 지나치게 의식하고, 자신들의 존재 방식을 어디서든 관철시키려고 하는 미국인들의 사고 패턴이야말로 이상하게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건 그들이, 어느 곳을 가더라도 자신의 존재의 윤곽을 드러내는, 큰 트렁크와 큰 차와 큰 집을 관철시키기 때문만은 아니다. 자기 존재의 윤곽을 드러내는, 가장 대표적인 것이 "개입"이다. 그걸 단순히 헤게모니 쟁탈이라는 정치적 욕동으로만 보지 말고, 존재의 방식으로 봤을 때 개입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덧없는 것이며, 우리는 반드시 있어야 하며, 존재하지 않거나 않으려고 하는 것들에 대해서 우리는 그것이 존재할 수 있도록 무엇인가를 해야한다"라는 식으로 볼 수 있으리라.  그런 개입을 위해선 "양심"(부끄러움)과 "육체"(행동)가 반드시 요구된다.

그렇다면 이 over-exist는, 굳이 미국인만의 문제는 아니리라. 또한 정치인만의 문제도 아니리라. 권력과 관계되는 지식인, 예술인뿐만도 아닐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존재 그 자체의 문제는 아닐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