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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지금-여기의 외부로서 한문맥의 가능성 “현대에도 중요하니까, 유용하니까 하는 이유 때문이 아니더라도, 현대와는 다른 하나의 세계를 이루고 있다는 바로 그 이유만으로도, 한자를 배울 의미는 충분히 있다. 하물며, 우리들이 탈피하려고 했던 말의 세계라면 더더욱.” 사이토 마레시, 『한문맥과 근대일본- 또 하나의 말의 세계-』, NHK 북스, 2007년 오늘날 동아시아의 인문학이 해결해야할 난제 중 하나는, 한문, 혹은 한문맥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문제이다. 그건 이미 죽은 말이지만 우리의 선조들이 사용했기 때문에 분명히 ‘우리 문화’의 일부이며, 그 흔적들을 어떻게든 보존-계승해야 한다는 입장이 있으리라. 그 한편으로 최근의 중국의 팽창과 관련되어, 살아있는 언어로서의 한자의 실용성을 강조하는 입장도 조금씩 힘을 얻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 더보기
역사적 국가에 대한 망각적 소비 카야마 리카『프티 내셔널리즘 증후군』 中公新書, 2002 후지와라 마사히코『국가의 품격』新潮新書, 2005 아베신조『아름다운 나라로』文春新書, 2006 강상중 『애국의 작법』朝日新書, 2006 최근 일본에서는 다양한 내셔널리즘 담론이 눈에 띈다. 최근에는 아베신조의『아름다운 나라로』(2006)나 후지와라 마사히코의『국가의 품격』(2005)이 화제가 되었다. 그런 책에는 바람직한 내셔널리즘의 이미지가 각각 그려지고 있다. 이렇게 팽창되는 내셔널리즘 담론의 장을 지탱하는 것은, 사회의 다양한 장소에서 눈에 띄는, 보다 비속한 내셔널리즘적 현상에 다름아니다. 예를 들면 축구 경기장에서 일장기를 페인팅한 젊은이들의 모습이 화제가 되고 있는데, 카야마 리카는 그런 사람들을「프티 내셔널리스트」(『프티 내셔널리즘 증.. 더보기
재즈는 자신 어느쪽으로 기울어지고 있는지 말해주지 않고… Writing about music is like dancing about architecture. - 마이크 몰라스키, “전후일본의 재즈문화”, 세이도샤, 2006년 이미 “세계작가”로서 명성이 높은 무라카미 하루키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하루키 텍스트 속에서 음악이, 그 중에서도 재즈가 독특한 의미 작용을 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실제로 재즈음반 컬럭터로 정평이 나있는 하루키는 “의미가 없으면 스윙이 아니다”라는 재즈에세이를 냈을 정도이다. 그렇다면 재즈는 과연 하루키 작품 세계만의 전매특허이며, 실재로 일본에서 재즈는 하루키의 작품에서처럼 ‘쿨’한 것으로만 이해되고 있을까? 물론 아니다. 하루키가 아직 세상에 대량으로 유통되기 전인 1974년, 일본문학 연구자로서 일본에 유학, 신주쿠의 재.. 더보기
방법과 '내 짓' 사이의 긴장 종이에 쓰여진 미로 안에서 헤매는 것은 사실은 불가능하다. 일거에 전체를 볼 수 있는 지도가 제시하는 것은 가짜 미궁에 지나지 않는다. 헤맨다는 것의 희열은 늘 부분밖에 보이지 않는 것과, 지도가 계속해서 미완성인 상태로 남아있다는 것에 기인한다. 따라서 나는 오히려 도중에 멈춰서 언제까지고 도착하고 싶지 않다고조차 생각한다. 조금씩조금씩 목적지에 접근하면서도, 그러나 그곳에 최종적인 도착과 지도의 최종적인 완성을 어디까지고 연기하고 싶다 - 마츠우라 히사키, 방법서설, 고단샤, 2006년 오늘날 인문학은 ‘방법’ 에 신들려 있는 듯하다. 갖가지 방법론에 대한 이해를 위해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는 현장에 이제 막 발을 들여 쩔쩔매고 있는 한 젊은 대학원생을 보다보면, 마치 자신이 정말로 어떤 물고기를 원하.. 더보기
'국토'를 통과하는 통로(Passage) —우찌다 류죠 “국토론”(치쿠마 쇼보, 2002) 우리들이 살고 있는 시대는 사고 왜소화의 시대이다. 철학이나 문학 분야에서, 일찍이 기존의 지(知)에 막기 힘든 구멍을 내왔던 사고가 상대화되고, 폐기된다. 이러한 현상의 배후에 있는 것은 분명 ‘소비사회’의 침윤이다. 예전의 문제제기는 유행이나 네트웍 속의 자질구레한 대화로 소비되고 만다. 하지만 그것만은 아니다. 사고의 왜소화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20세기에 있어서 사람들이 살아가고, 통과해온 역사의 무게 아닐까? 상대화하기 힘든 그 ‘무게’를 참아내지 못하고, 사람들을 20세기를 회피한다. 그 결과 사고도 왜소화된다. 현대의 사고는 대량생산이나 대량소비, 또 과중한 전쟁의 역사로서의 20세기를 모태로 삼아, 그곳에서의 인간존재나 사회의 근본적인 흔들림.. 더보기
영상에서 난감한 말의 현실로의 정박 -아베 카즈시게『그랜드 피날레』(고단샤, 2005년) 최근 10년간 이 세계에 일어난 두드러진 변화는 무엇일까? 여러가지 변화 속에서도 ‘IT 혁명’이라 불리워지는 테크롤로지 변화만한 것은 없으리라. 1995년 윈도우 95 출현을 계기로 시작된 이 변화는, 문자정보의 데이터화를 거쳐, 이제는 영상을 스톡하고, 문자의 개입없이 영상을 그 자체로 검색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즉, 영상-이미지에 의한 직접적인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다고 믿는 세계가 도래하려고 한다. 이런 변화에 대해서, 한국 문학은 아주 일찍부터 ‘문자의 패배’를 예감하고 기정사실화하는 듯한 포즈를 보였다. 장정일이 “너에게 나를 보낸다” 후기에서 영상매체에 의한 서사의 무력함을 내뱉은 것은 IT 혁명 이전-그러니까 한국에 MTV와 스타채.. 더보기
응답과 회신, 그 ‘절대적희생’의 구조 속에서의 선택 타카하시 테츠야, “야스쿠니 문제”(치쿠마 신서, 2005) “국가와 희생”(일본방송출판협회, 2005) 31절 경축사에서 또다시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문제를 끄집어낸 노대통령에 대해, 코이즈 총리는 전후 일본의 평화억지 노력을 주의깊게 봐달라는 짤막한 반응을 보였다. 정치-외교적 차원에서 연례행사처럼 벌어지는 일본총리의 야스쿠니 참배 금지에 대한 요청과 이에 대한 회신은, 이처럼 서로에 대한 아무런 영향력도, 책임도 없는 채로 끝나는 모롤로그의 반복처럼 보여진다. 그렇다면 서로에 대한 의미있는 요청과 회신은 어떻게 가능할까? 그리고 그것이 야기하는 문제는 어떤 것일까? 2005년 상반기와 하반기에 각각 출간된, 타카하시 테츠야(高橋哲哉) 의 “야스쿠니 문제”와 “국가의 희생”은 이러한 문제의 하나의..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