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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문학 & 일본

사라진 선생님들은 어떻게 귀환하는가 1.학교와 폭력 일본의 문화콘텐츠 속에 학교는 어떠한 모습일까? 영화 나 , 혹은 만화 「슬램덩크」로 대표되는 청소년기의 풋풋하고 낯간지러운 사랑과 훈훈한 우정으로 가득 차 있는 학교의 모습을 떠올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나 에서 보듯이 수업 시간에도 선생님의 말씀은 아랑곳하지 않고 잡담을 하거나, 대들고 주먹다짐을 벌이다가 마침내 칼을 휘두르는, 살벌한 풍경의 학교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자, 그럼 어느 쪽이 ‘리얼’에 가까울까? 양 쪽 모두 허구로 구축된 세계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동시에 양쪽의 허구는 모두 어느 정도의 사실에 기반을 둔 것임도 놓쳐서는 곤란하다. 그러니까 사랑과 폭력은 어떤 ‘리얼’이 존재하기 때문에 비로소 허구로서 성립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리.. 더보기
1984년의 두 개의 달-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혹은 폭력과 사랑 디스토피아로서의 ‘1984’, 유토피아로서의 ‘1984’ 세계 문학에서 1984년은 매우 특별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위대한 문학자의 출생과 죽음, 혹은 문학 작품의 탄생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들에게 있어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에 지나지 않는 1984년은 세계문학에서는 영원히 도래하지 않을, 혹은 도래해서는 안 될 미래의 대명사로서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는 주지하듯이 1949년 조지 오웰이 발표한 『1984』로부터 시작되었다. 전운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치는 유럽에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조지 오웰은, 숨을 거두기 일 년 전 자신이 떠나가게 될 이 지구의 미래를 바라보며, 이를 ‘1984’이라는 숫자에 각인시킨 것이었다. 조지 오웰의 눈에 비친 1984년은 그리 낙관적이지는.. 더보기
스놉과 짐승 사이―전후 일본의 우파와 역사성 1. 스놉이라는 형상 뒤에 남은 존재들 일본인은 누구인가. 이 질문을 둘러싸고 이미 다양한 논의들이 존재하고 있지만, 전후 일본을 방문한 한 철학자에 의한 정의는 오늘날 한국에서 유독 주목 받고 있다. 바로 헤겔 철학자로 알려진 코제브의 그것이다. 1959년 코제브의 눈에 비친 일본인들은 한가롭게 꽃꽂이와 다도를 하며 ‘평화’를 만끽하는 모습이었고, 그러한 모습 속에서 그는 역사의 종말 후의 ‘인간’을 봤다. 이미 미국과 소비에트, 중국 여행에서 ‘지금-여기’에 조금도 불만을 느끼지 않고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부정’을 통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인간의 역사와는 전혀무관한 ‘동물’로 정의한 이 철학자에게는, 유럽적 의미에서의 어떠한 정치적, 도덕적, 종교적 논쟁도 하지 않고 형식적인 틀에만 얽매이는.. 더보기
생활보수주의 그 시대의 특징적인 것은, 경제가 오르막이었을 때의 생활보수주의자의 담당자였던 사람들이, 실은 동시에 사회운동-시민운동의 담당자였다고 하는 점입니다. 당시 가장 정치적으로 급진 적이었던 국철 노동조합 청년부조차도, 안정고용과 임금상승 속에 있었던 셈이죠. 1960년대에 투쟁을 하고 있었던 사람도, 70년에 투쟁을 하고 있던 사람들도, 양쪽 모두 생활보수주의의 신봉자였다는 점에 있어서는, 즉 중산계급적인 생활을 욕망하고 있었던 점에 서도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얼터너티브한 생활문화를 추구하는 운동이 한편에 있긴 한데, 이것이 환경과 협동조함이었어요. 하지만 결국 어느 쪽도 소수파의 운동으로 멈추게 되었죠. 소비사회화 속에서, 소비는 미덕이라는 가치관을 넘을 수 없었던 것이죠. 지금 생각해보면, 환경 .. 더보기
殉死 자신이 친히 데리고 있던 그들이, 목숨을 아까워 하지 않는다는 것은 타타토시도 믿고 있었다. 따라서 순사(殉死)를 고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이에 반해서 만약 자신이 순사를 허락하지 않은 채로, 그들이 살아가게 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가신 일동은 그들을 죽어야할 때에 죽지 않는 자, 은혜를 모르는 자라고 생각하며, 비겁자라고 업신여기리라. 그것만이라면, 그들도 혹은 참고 목숨을 미츠히사에게 바칠 때를 기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선대의 주인은, 그들이 은혜를 모른다는 것도, 비겁자인 것도 모르는 채로 그들을 데리고 있었다고 말하는 자가 있다면, 그건 그들이 참을 수 없으리라. 그들은 얼마나 분하게 생각할 것인가. 이렇게 생각하니, 타다토시는 「허락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모리.. 더보기
미시마 유키오 VS 전공투 미시마의 영문 인터뷰를 찾아보다가, 우연히 전공투와의 토론 영상을 발견하고, 한참 보면서 웃었다. 글로 볼 때는 몰랐는데 이렇게 화상 속의 분위기를 보니, 뭐랄까 음성언어가 수록된 문자 언어가, 음성 언어가 가진 독특한 아우라를 툭툭 쳐내고는, 세월이 지나면서 한없이 무거워지고 말았다는 느낌이 든다. 그러니까 그 느낌은, 유튜브의 이 영상 밑에 달린 다음의 코멘트로 대변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에 "혁명의 시대" 따윈 없다. 모든 게 "놀이"였다." 물론 이런 코멘트는 "냉소주의"라고 비난 받을 수 있다는 걸 모르는 바 아니다. 좌파와 우파가 만나서 화기애애하고, 진지하게 사상적 논의(?)를 하고 있는 것이, 이 토론의 본질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을 테다. 근대를 초극한다는 것, 그 일점이 중요하다고 하.. 더보기
전향: 이론-원리중독자들의 작은 세계 표 (1) 전향에 대한 일반적 이해 표 (2) 전향에 대한 요시모토 타카아키의 이해 일반적으로 "전향"이라는 말은 사상이나 정치적 신념을 바꾸는 것을 의미하는데, 일본의 경우에 "전향"은, 1920-30년대, 국가 공권력의 탄압이란 외적 요인에 의해서 적지 않은 지식인들이 공산주의-사회주의적 입장을 포기하게 된, 일련의 사건의 핵심 키워드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표1) 이런 문제로서의 "전향"은, 패전 후 일본의 지식인들이 왜 우리는 질수 밖에 없는 무모한 전쟁을 할 수밖에 없었는가, 혹은 왜 일본인들은 전쟁을 막을 수 없었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에서 주목받게 된다. 즉, 한 인간의 사상적 자유가 왜, 그리고 어떤 식으로 포기되었는가-를 추적함으로써, 1920-45년까지의 일본사회의 문.. 더보기
게임적 문학의 시도 : 리셋 가능한 생(生)의 가능성 ☞ 순문학의 독자가 다양한 계급이나 연령에 걸쳐있다고 하는 것은, 순문학이 현실을 그리고 있다고 하는 기대에 의해 지탱되고 있다. 그러한 기대가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쿠타가와상 수상작을 둘러싼 보도 기사이다. 그들 기사에서는 대부분의 경우, 소설의 내용이 사회문제와 결부되어 말해진다. 미스테리나 호러는 오락을 위해서 읽지만, 순문학은 오락이 아니라, 사회를 알기 위한(예를 들면 NEET나 재일 한국인의 현재나, 독신 여성의 현재를 알기 위해서)교양으로서 읽는다고 하는 전제가, 일본에서는 반년마다 재강화된다. ☞ 1995년 이후, 필자가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에서 "동물의 시대"라고 부른 시대가 시작되자, 사람들은 복잡한 이상이나 허구가 아닌, 단순한 현실을 찾기 시작했고, 순문학은, 문학적 실험..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