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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알라딘 중고서점의 일어판 푸코

 


약속보다 너무 일찍 합정역에 도착해서, 어디로 갈까 두리번거리다가 알라딘 중고서점을 발견하고 들어와봤는데,  어라 의외로 괜찮은 걸.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외국서적 쪽에서 의외의 책을 발견하고 냉큼 집어서 계산대로 가지고 가니, 점원이 "이거 왜 이리 비싸죠 ?"  하고 반문하더니 이것저것 조사해보고는 납득한 듯이 말한다. "들어와서 한번도 나간 적이 없어서 그래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계산을 끝낸 후, 6월 19일에 볶았다는 케냐 AA의 드립커피를 주문한 후에 테이블에서 책을 펼치면서 생각했다. 그치, 애초에 일어판 미셸 푸조의 콜레주드프랑스 강연록이 여기에 있다는 것이 이상하지. 대체 누가 왜 사서는, 왜 팔았을까?  뭔가 흔적이라도 있을 법 싶어서 책을 이리저리 훑어봤는데도, 책은 깨끗했다. 도대체 누구일까? 


그러니까 (아마도 야심차게) 일어판 푸코를 사가지고(와서)는, (아무런 미련을 남기지 않고 냉큼) 알라딘 중고 서점에 팔아버린 자는?


몇몇 얼굴이 떠오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남편이 일본에서 사온 책을 부재중에는 냉큼 팔아버리는 분도 있었고, 한 때 열광적인 푸코리언이었다가 이제는 '푸'도 입에 올리지 않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웬지 내가 아는 사람인 것 같지는 않았다.   


뭐 나야 거의 새것에 가까운 책을 배송료없이 산 것과 다름없었지만(그렇다고 뭔가 크게 이득을 얻은 것 같지는 않다), 나는 그 누군가가 자꾸 신경쓰여 책을 읽을 수가 없었다. 고개를 젖혀 천장을 보니, 셜록홈즈의 인용이 데커레이션 되어 있다. 옮겨본다. 


"It is a little difficult to know what to do, Watson," 

said he, at last. "My own inclinations are to push this inquiry on, for we have 

already lost so much time that we cannot 

afford to waste another hour. 

On the other hand, we are bound to inform 

the police of the discovery, and to see that this 

poor fellow's body is looked after."


음, 음, 음 너무나도 홈즈 같은 말이다. 시간과 조사, 그리고 신체. 그리고 그것은 푸코의 키워드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것을 누군가 버렸고, 나는 그것을 샀다. 

 

이 책을 읽고 무엇이 바뀔지, 혹은 정말로 이 책을 완독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 책이 다시 여기 돌아오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은 분명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