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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생각

그들의 정체성

 

 

 


사랑예찬

저자
알랭 바디우 지음
출판사
| 2010-11-30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 사는 것을 제도적으로 인정받는 결혼이라는...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반동적인 제안은 늘 보호해야 할 것은 "우리들만의 가치"라고 말하며, 유일하게 가능한 정체성으로 여기는 세계화한 자본주의의 일반적인 틀 안에 우리를 쑤셔넣고자 하는 그런 제안입니다.

반동세력이 주제로 삼는 것은 어떤 현식 속에서건, 아주 갑작스럽게 등장하는 정체성에 관련된 주제입니다. 주제가 정체성의 논리로 일관될 때, 사랑은 필연적으로 위협받게 됩니다. 차이를 위해 우리는 이러한 논리의 경향, 그것의 비사회적인 차원과 야만적이고도 경우에 따라 폭력적이기도 한 면면에 이의를 제기할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면에서 안전을 주장하고, 안전하려는 모든 행보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그런 "사랑"을 폭로할 것입니다. 법을 위반하고 법에 이질적인 것들 안에서 사랑을 보호하는 것, 이것이 바로 지금 요구되는 임무입니다. 최소한, 우리는 사랑에서 차이를 의심하는 대신 차이를 신뢰하고 믿을 것입니다. 반동은 언제나 동일성의 이름으로 차이를 의심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반동의 일반적인 철학적 좌우명입니다. p108

 

일요일, 아무도 없는 연구실 조교 책상 위에 얌전히 놓인 바디우의 책을 읽다가 왜 한국 사회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신화가 점점 더 강해지는지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 더불어 윤창중, 변희재 등이 보여주는 한국 보수파(혹은 XX보수)의 적나라한 현실이 무엇인지.

 

나는 그들이 바디유가 말했듯이 피아의 '정체성'의 문제에만 관심을 기울인다는 점에 대해서 찬성하지만, 윤창중의 경우는 다음과 같이 고쳐씀이 더욱 바람직할 것 같다. 그는 정체성의 문제를 오직 자신이 제대로 대접받고 있는가 어떤가 하는 문제로 왜소화했다고.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인턴 사원에 대한 윤창중의 행동이 어떤 프로세스로 이루어졌는지 이해 못할 것도 없다.

 

그의 기자회견을 보다 보니 그가 자신에 대한 푸대접에 화를 내고 있었다는 점이 느껴졌다. 그니까 정부의 대변인인 자신에게 고작 인턴 사원이라니, 하는 식의. 그가 인턴 사원을 반복적으로 가이드로 부르는 것도, 자신도 대접받아야 하는 중요한 손님이어야 한다는 당위가 얼마나 뿌리깊게 그 자신의 내면을 지배하고 있는지에 대한 반증으로 볼 수도 있겠다.

 

그런 생각에 사로잡힌 윤창중에게 사태는 유리하게 돌아가지 않은 듯 하다. 대통령의 방미 일정은 빽빽했고, 대사관은 아마도 수행원 모두를 챙길 수 없었던 것 같다. 방미일정에서 무엇을 기대했는지 모르지만, 그는 크게 실망했고 스스로를 위로하고자 한 행위는 참으로....(스스로 반성했다고 한다!).

 

이러한 윤창중의 모습이 남양유업과 라면 상무로 패러디된 점도 우연이 아닌 듯 하다. 먼저 회사의 상무와 윤창중이 모두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 혹은 미국 속의 대사관에서 일하는 인턴과 그런 사건을 일으켰다는 점도 중요하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묻지도 않으며 직함에 걸맞는 대접 역시 요구할 수 없는 그런 상황 앞에서, 그들은 자신의 누구인지를 알아줘야 할 사람들조차 그렇지 않은 데에 대해서 분개하고 있었다. 그들의 분노는 사실상 너무나도 유아기적이다. 즉, 자신을 당연하게 사랑해줘야 할 부모나 선생님, 혹은 자식이, 자신은 그 동안 열심히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사랑해주지 않는다는 식의 반응의 연장선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문제는 그러한 분노가 사회적으로 성공한 보수파의 정체성을 규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는데, 왜냐하면 그들은 이미 돈으로 그만한 대접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태들이 말해주는 것은, 그들이 그에 걸맞는 대답을 스스로 받지 못하고 있다고 느끼며 분노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러한 분노와 이번 정권의 탄생은 무관하지 않다.

 

이러한 그들은, 바디유에 따르자면 사랑이 무엇인지 너무도 모른다고 할 수 있겠다. 둘이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가고자 하는 것이 진리 프로세스라는 철학적 사유는 일단 재껴두고서라도, 그들에게는 돈과 직함이 없더라도 사랑받아본, 혹은 나이와 돈과 직함을 떠나서 사랑해 본,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상처와 치유를 얻어본 경험이 정말 있었을까?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제가 모든 연극 속에는 코뮤니스트적인 무엇이 있다고 감히 주장할 수 있는 까닭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코뮤니스트"라는 말에서 저는 이기주의보다 '공통의 무엇(encommun)을, 사적인 이익보다 공동체적인 행동을 더 우월한 것으로 만들어주는 모든 변화를 듣습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다. 저처럼 어떤 사랑의 진정한 주체가 사랑을 구성하는 개인들의 만족이 아니라 커플의 변화라고 인정한다면, 사랑은 이런 의미에서 코뮤니스트적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에 대한 가능한 정의 가운데 하나는 바로 "최소한의 코뮤니즘"일 것입니다.

 

이와는 반대로 한국의 좌파에는 언제나 위험할 정도로 사랑이 넘쳤다. 바디유는 이것을 코뮤니스트적인 것의 본질로서 설명하고 있는데, 한국의 좌파 역시 이러한 사랑으로 여러차례 이념적 위기를 극복했지만, 이는 때로는 무척 심한 반발을 불러일으키는 주요 원인이기도 했다. 즉, 합리적이지 않고 맹목적이며, 광신적이라고. 결정적으로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데도 사랑받는다는 점 그 자체가 증오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노무현의 경우가 그랬던 것 같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변희재 같은 사람을 지금 이순간도 불태우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 아닐까.

 

그, 혹은 그들에게 다음과 같은 시를 들려주면서 이 시끄러운 주말을 마무리하도록 한다.

 

 

 

 

 

 

 

 

 

 

너희들은 사랑이 뭔지 모르지

 

 (찰스 부코우스키, 시 낭독의 밤)



너희들은 사랑이 뭔지를 모른다, 그렇게 부코우스키는 말했지.
나는 쉰 한살이 되지만,
젊은 여자와 사랑을 나누고 있네
나도 홀렸지만 상대도 더이상 물러나지 않게 되어버린 거야
하지만 괜찮아, 사랑이란 그런 거니까
나는 여자들의 마음에 단단히 들어가 있으니까
나를 그곳에서 쫓아낼 순 없지
모두 필사적으로 도망치려고 해도
결국 모두 다시 돌아오지
내가 버렸던 한 여자를
빼고는
그 여자 때문에 나도 울었지
그치만 뭐 젊었을 땐 이런저런 일로 우는 거니까
센 술은 권하지 말아 주길
센 게 들어가면 난 폭주하니까
나는 이렇게 맥주를 마시면서도
너희 히피 녀석들과 하룻밤 얘기할 수 있고
이런 맥주 10 쿼터 마시는 건
결국 물 마시는 것과 다름없네
하지만 내게 센 걸 먹여보게
나는 차례로 주위 사람들을 창밖으로 내던져 버린다고
요놈도 조놈도 창밖으로 던져버리지
정말로 그렇게 한 적이 있다구
너희들은 사랑이 뭔지를 모른다 말이다
한 번도 사랑을 해본 적이 없으니까
알 리가 없는 거야, 그 정도의 것도
나는 젊은 여잘 손에 넣었어, 미인이라구
그녀는 나를 부코우스키라고 부르지
작고 귀여운 목소리로, 부코우스키, 라고 말이야
왜 그래, 하고 나는 말하네
하지만 너희들은 사랑이 뭔지를 모르지
이렇게 가르쳐 줘도
너희들의 귀에는 그것이 도달하지 않네
여기에 있는 너희들 누구 하나
사랑이 바로 옆에까지 와있어도 눈치채지 못하지
설령 엉덩이에 박힌다 치더라도.
나는 옛날에 시의 낭독은 변절이라고 생각했더랬지
나는 이제 쉰 하나로 많은 걸 봐왔네
암 그건 분명 변절이고 말고
하지만 나는 스스로에게 말하지, 어이, 부코우스키
굶고 있는 건 더 지독한 변절이라구
이런 식으로 세상사 뜻대로 되는 게 없네
Galway Kinnell란 녀석
잡지 사진으로 볼 땐
꽤 미남으로 보였지만
어차피 이 자식은 학교 선생
거참, 정말이지
그치만 너희들도 선생이군
음 왠지 너희들 욕을 하는 거 같군
아니, 그 녀석 얘긴 들은 적도 없어
그 남자도 모른다고
모두 흰개미 같단 말이다
아마 내가 그다지 책을 읽게 되지 않은 건, 내 에고 탓이리라
그치만 5,6권의 책을 내 유명하게 된 녀석은 모두
흰개미야.
어이 부코우스키, 그녀는 말하지
어째서 하루종일 클래식을 들어요?
그녀는 그런 말을 해
조금 놀랍지 않은가
나 같은 백수가
하루종일 클래식을 듣는다니
브람스, 라흐마니노프, 바르톡, 텔레만
제길 여기선 아무 것도 쓸수 없어
너무 조용하고 나무가 너무 많다구
나는 도시가 정말로 도시가 좋단 말이다
아침이 되면 클래식 뮤직을 걸고 말이지
타이프 라이터 앞에 앉아
권련에 불을 붙이고, 봐 이런 식으로
그리고, 어이 부코우스키 자넨 운이 좋은 남자네, 라고 스스로에게 말해
어이 부코우스키, 많은 일이 있었지만
자넨 운이 좋은 남자
파란 연기가 테이블 위를 흘러
나는 창 밖의 델롱프리 에비뉴를 바라보지
사람들은 거리를 걷고 있어
그래서 나는 이런 식으로 권련의 연기를 뱉고
권련을 재떨이에 놓고
깊은 숨을 들이키고
그 후에 쓰기 시작해
어이 부코우스키 이것이 인생이라고 나는 말하지
가난하고 치질환자라도 좋아
사랑하고 있다는 것도 좋아
그치만 그것이 뭔질 너희들은 모른다
사랑이란 게 도대체 어떤 것인지
그녀를 본다면 내가 말한 것을 알려나
그녀는 내가 여기 와서 누군가와 자지 않을까 생각하지
알고 있어요, 그녀는 말하지
아주 잘 알고 있으니까, 하고 말이지
어이 나는 쉰 하나, 그녀는 스물다섯
그런데 우리들은 사랑을 하고 있고 그녀는 질투를 하지
멋지지 않은가
만약 여기서 여자와 잔다면 눈깔을 뽑아버릴 테니까, 하고 그녀는 말했네
그것이 사랑이란 거네.
너희들 중 한 사람이라도 사랑이 뭔지를 알까?
그래, 그래, 그래 그러고 보니
내가 형무소에서 만난 녀석들은
저 근처의 차고에서 서성거리지만
시 낭독회에 오는 녀석들보다
인간으로서 훨씬 제대로 된 녀석들이었어
낭독회에 오는 녀석들 따윈 모두 거머리같은 녀석이란 말이다
시인의 양말은 더럽지 않는지
겨드랑이에서 냄새가 나지 않는지
그런 걸 생각하는 녀석보다는 말이지.
하지만 괜찮아, 기대에 부응해줄 테니까
단지 이것만은 기억해두게
오늘밤 이 방에는 단 한 사람의 시인밖에 없고,
이 마을에도 한 한 사람의 시인밖에 없으며,
아마 오늘밤 이 나라를 뒤져봐도 제대로 된 시인은 단 한사람밖에 없다는 걸
그것은 바로 나네
너희들이 인생의 무엇을 안단 말인가
너희들은 아무것도 몰라
너희들 중에 실업한 녀석이 있는가
여자를 때려눕힌 녀석이 있는가
나는 Sears & Roebuck에서 5번 짤렸단 말이다
서른 다섯 살 때 나는 창고지기를 하고 있었고
쿠키를 훔쳐다나 해서 짤렸지
그런 곳에 있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나는 알고 있어
지금 나는 쉰 하나에 사랑을 하고 있네
내 귀여운 그녀는 이렇게 말하네
어이 부코우스키
왜 그래 나는 말하고 그녀는 말해
당신은 초 X 같아
그럼 난 베이비, 너 머리가 좋군 하고 말하지
그녀는 그저 한 사람의 여자
남자든 여자든
내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단 한 사람
그러나 너희들이 사랑이 뭔지를 알겠는가
그들은 모두 내게로 돌아온다네
한 사람 남기지 않고 돌아오지
내가 버린
단 한 사람의 여자를 제외하면
그 여자와는 7년을 살았지
우리들은 옛날에 어쩔 도리가 없는 주정뱅이였지
이 방에는 두 사람의 타이퍼 있지만
시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네
그래도 나는 놀라거나 하진 않아
시를 쓰기 위해서는 사랑을 하지 않으면 안됨에도 불구하고 너희들은
사랑한다는 건지 뭔지를 모른단 말이다
그것이 문제야
이봐 술을 줘
응 얼음은 필요없어
그래, 그걸로 괜찮아
자 쇼를 시작하자
걱정할 것 없어 그저 한모금이니
아 맛있군
근데 슬슬 해볼까
하지만 끝난다면
창문 앞에는 서지 않도록 해주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