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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생각

스컬리의 수난




엑스파일의 다섯번째 시즌은, “스컬리의 수난사라고 요약할 수 있겠다. 사진 속에 있는 일을 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납치 사건 이후 그녀의 목덜미에 박힌 칩을 제거하자마자 그녀는 암에 걸렸고, 상태는 나날이 악화된다. ‘담배의 도움(?)으로 멀더가 구한 칩을 이식하는 것에 의해서 암은 치유되지만, 이번에는 임신을 할수 없게 되어버린다. 자신이 임신을 하지 못하게 되었음을 알았을 때, 그녀는 한 소녀를 알게 되는데, DNA 감식 결과 그 소녀가 바로 자기 딸임을 알게 된다. 그 소녀는 납치 기간 중에 적출된 스컬리의 난자를 대리모에 이식하는 것을 통해서 태어났는데, 결국은 죽고 만다.

 

이렇게 스컬리가 한시즌 동안에 겪는 수난과 견줄 수 있는 경험이 도대체 무엇이 있을까



쉽게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왜 그 수난이 멀더가 아닌 스컬리가 되어야 하는지는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여자이지만 임신을 할 수 없고, 자기가 낳지 않은 아이와 만나서 그 아이의 엄마로서 그 죽음을 봐야하는 비극. 이런 식의 드라마틱한 생정치(바이오폴리틱)가 벌어질 수 있는 장소는, 바로 여자다.

진보하는 과학의 미래의 방향성을 정치성과 링크시키는 것을 통해서
, 이런 징후적 수난의 형식을 만들어낸 작가, 크리스 카터의, 잔인할 만큼 천재적인 능력에는 물론 경의를 표해야 하리라. 또한 그녀의 수난은, FBI라는 직업에 충실한 결과라는 점에서, 직업 여성의 수난에 대한 예시로도 읽혀질 수 있다. 하지만 작가는, 그녀의 수난을, 신앙의 버림과 회복이라는 문제로 전개해 간다. 어떻게 보면 가장 통속적일 수도 있는 이 부분에, 실은 많은 것이 있다 

 

스컬리는 자신의 여자 형제에게,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은, 의사가 되려고 한 것과, FBI 수사관이 되려고 한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 중요한 의사 결정의 순간마다, 그녀는 단지 이것이야말로 나의 길이라고 생각했다고, 그렇게 여자 형제에게 말한다. 동시에 그녀는 그러한 결정들이, 자신이 신앙에서 점점 멀어지도록 만들고 있고, 만들어갈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작가는 그러한 결정들이, 사실상 신앙의 문제로 그녀를 데리고 가는 가장 빠른 길이라는 것을 애초부터 알고 있었다. 멀더와의 만남을 통해서 그녀가 매일 보는 경구는, 다름아닌 “I WANT TO BELIEVE”였으니까.  , 믿어야할 대상이 아니라, 믿는다는 행위 그 자체를 원하는 것, 그것은 이미 믿고 있는 멀더를 위한 경구가 아니라, 그 방에 들어오는 방문객, 스컬리를 위한 경구라는 것을, 작가는 복선으로 깔아놓고 있다.

 



그렇게 십자가를 찾는 스컬리와는 달리, 그야말로 믿음-신념의 화신처럼 비춰줬던 멀더가, 다섯번째 시즌에서 우주인이 있다고 하는 강철같던 신념을 부인한다. 우주인은 정부가 생체실험을 계속 하기 위해서, 사람들의 눈을 돌리기 위해 꾸며낸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외부그 자체가 환상이라고. 심지어 최면술을 통해서 불러낸 자신의 여동생의 납치에 대한 기억마저도, 부인하게 된다. 그렇게 멀더의 믿음의 대상이 바뀌게 되는 데에는 스컬리의 수난이 한몫 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 그런 부인은, 자신의 믿음으로 인해 스컬리의 수난이 시작되었다는 것에 책임을 지려는 행위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멀더는 신념 그 자체를 버리지는 않았다. , 멀더 내부에는 외계인 존재론 대신, 외계인 음모론이라는 새로운 신념이 생겼을 뿐이다. 그는 믿음을 원하는 자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체현하는 자다. 그런 전환-전향은 믿음을 지속시키기 위한 하나의 방법일 수 있겠다.  

 

그런 멀더를 보고 스컬리는 변했다고 느낀다. 아니, 내겐 오히려, 그녀가 무엇인가 변했다고 느끼고 싶어하는 듯이 보였다. 마치 자신의 수난이 무엇인가를 변화시켰다는 것을 꼭 확인하고야 말겠다는 듯이.

 

분명 수난은 우리들에게 변화의 암시로 종종 받아들여진다. 실제로 수난은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빼앗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봤을 때는 분명 변화를 동반하기도 한다. 하지만 수난의 깊은 의미는, 내가 이렇게 수난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나 혹은 세상은 그리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는 데에 있다. 수난을 겪은 어떤 사람을 보고 그가 많이 컸다고 말하면서 놀라워할 때, 우리는 사실 그렇게 수난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그 자신이 알면서도 견딜 수 있게 되었다는 바로 그 사실에 놀라고 있는 것은 아닐까그런 의미에서 멀더를 향한 스컬리의 시선은, 그녀의 수난이 여전히 끝나지 않았음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으리라.

 

아니, 본격적인 수난은 어쩌면 멀더의 방이 불타고, 둘이 엑스파일 사건에서 제외될 때 비로소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진정한 FBI요원답게, 혹시 테러에 쓰일도 모르는 사제 폭탄 제조를 예방하기 위해서 컴퓨터 앞에 앉아서 위험품목들의 데이타를 짜고, 그 데이터의 실제 사용여부를 시골로 확인하러 가거나, 예산 오버 분에 대해 월급에서 깐다는 말을 듣고, 한번만 더 선을 넘으면 해고라는 협박 속에서 살게 되는 여섯번째 시즌 때.